2000년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한국 기업은 12개로 중국(10개)를 앞섰다. 당시만 해도 중국은 우리나라의 19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개도국으로 여겨졌다.
그 후로 7년. 포천의 세계 500대기업 명단에는 중국기업이 24개로 한국의 14개를 크게 앞섰다. 이 같은 추세라면 수출효자 업종인 철강과 조선, 자동차, 가전의 한국대표 기업들이 중국 기업에게 추월 될 날 도 멀지 않아 보인다.
한ㆍ중수교 15년이 흐르는 동안 양국간 경제협력은 상호보완에서 경쟁관계로 가속화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눈부신 중국의 산업 기술력 발전으로 한국에 대한 추격이 빨라지면서 주요 산업별 기술력 격차는 이미 크게 좁혀졌다. 코트라가 23일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 광둥(廣東)성 등 주요지역의 중국기업 312개사를 대상으로‘중국기업이 평가하는 한국과 한국기업 경쟁력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0.6%가 ‘중국의 기술이 한국보다 앞서거나 비슷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관심을 끄는 부분은‘중국에 더 이상 한류(韓流)는 없다’고 보는 사람이 두 명중 한명 꼴(44.6%)이었다.‘한류가 1,2년 내 하락 혹은 이미 하락 중’이라고 보는 중국인도 22.5%에 달했다.
물론 중국인들의 주관적, 애국적 평가이긴 하다. 아직 디스플레이나 조선, 반도체 등에서 한ㆍ중간 기술격차는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범용제품은 물론 휴대전화과 컴퓨터 등의 차이는 크게 좁혀졌거나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 중국 기업인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중국의 고도 성장 속에서‘메이드 인 코리아’상표의 기술력 우위가 빠르게 잠식되고 있고, 유효기간도 그리 길게 남아있지 않다는 자신감이 중국 기업인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연구 기관들이 내놓은 2010년 이후에 대한 우려감 섞인 보고서에서도 이런 현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장보영 한국산업기술재단 책임연구원 “1,2년 후면 이동통신과 2차전지 등 전자 분야에서 중국이 한국의 기술력을 능가할 것”이라며 “2010년에는 조선과 자동차부품 등 몇몇 업종을 제외하고 전분야에서 기술력 격차가 사라져 대(對) 중국 무역흑자 기조도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한국산업기술재단에 따르면 이동통신단말기의 경우 산업경쟁력이나 기술경쟁력 모두 중국과 차이가 없거나 길어야 2년 정도 될 것으로 조사됐다. 2003년만 해도 산업은 2년, 기술은 2~2.5년 정도 한국이 앞서 있었다.
CDMA는 원천기술보유자인 퀄컴의 대 중국 저가전략 영향으로 산업경쟁력에서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상황이다.
가전 분야도 청소기와 세탁기의 기술경쟁력 격차는 2005년 각각 3년과 2년이었으나 2010년에는 모두 1.5년으로 축소되고 산업경쟁력 격차도 1~1.5년으로 좁혀질 것으로 예상됐다.
TFT LCD, PDP 등 디스플레이의 기술경쟁력 격차는 지난해 3.5년이었으나 2010년에는 2년 정도로 좁혀지고 산업경쟁력 격차는 2010년 1~2년으로 좁혀질 것으로 보여진다.
한ㆍ중경협에서 우리 입장은 더 이상 동반자로서가 아닌 치열한 경쟁관계로 모든 분야가 아닌 특정분야에서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급한 시점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상은 수석연구원은 “앞으로 중국경제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향후 한국경제의 성장속도와 질이 결정될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대중국 수출을 고부가가치 품목위주로 전환하고, 시장확대가 예상되는 서비스업, 환경ㆍ에너지 관련사업, 유통업 등에 대한 한ㆍ중 경제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 한국인만 중국을 아는 '짝사랑' 우려
수교 15년 동안 한국은 대중 무역 흑자를 이어가는 등 화려한 경제성적표를 받았다. 하지만 인적 교류 등 다른 지표들은 경제성적과는 다른 결과를 보이고 있다.
김하중 주중 한국 대사는 최근 중국 전문가들에게 한 강연에서 “한국에는 매일 중국 관련 서적이 쏟아지지만 중국에서 출판되는 한국 관련 서적은 매우 적다”며 “한국은 중국을 잘 아는데 중국은 한국을 잘 모르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난 15년은 한국이 중국을 알고자 접근했던 기간이다. 지난해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은 392만명이었지만 방한한 중국인은 89만여명에 그쳤다.
중국 내 한국 유학생은 5만 7,000여명이지만 한국 내 중국 유학생은 2만 명에 불과하다. 2010년 양국은 1,000만명 교류시대를 열 것으로 관측되는데 현 추세대로라면 80% 이상은 한국인의 중국방문이 차지할 것이다. 중국 당국이 공인하는 중국 능력 시험인 한어수평고사(HSK)의 응시자중 61%가 한국인이다. 세계에서 한국인이 중국어를 가장 잘 하는 국민인 셈이다.
한 때 1억 명이 넘는 중국인이 대장금 같은 한국 드라마를 보았지만 이런 열기가 사라진 지 오래다.
2005년 대장금 열풍에 놀란 중국 당국이 한국 방송 드라마의 수입을 억제하면서 20여편에 이르던 한국 드라마 수입 편수는 지난해 4편으로 줄었다. 요즘 중국 방송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는 ‘내 이름은 김삼순’ 등 몇 편에 지나지 않는다.
한류 스타도 사라졌다. 다시 한류 바람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한류가 미국 등 서구 문화의 징검다리 역할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양국 교류에서 인구, 자원, 경제규모 등 각국의 특성을 감안해야 하지만 앞으로도 중국인이 한국인만큼 상대를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은 높다. 수교 15주년을 맞아 성숙된 한중 교류 방안을 고민하고, 중국인의 발길과 관심을 한국으로 유도할 수 있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 "양국은 감정 배제하고 대승적 관계로 상생을"
초대 주한 중국대사를 지낸 장팅옌(張庭延ㆍ72) 현 중한우호협회 부회장은 22일 “한중 수교가 없었다면 현재의 남북, 북미, 한중 관계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며 한중 수교의 영향을 설명했다.
장 부회장은 “냉전이 무너지는 거대한 흐름 속에 진행된 한중 수교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 왔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장 부회장은 “한중 관계가 15년 만에 이렇게 발전할 줄은 누구도 상상을 못했다”며 양국 관계의 발전을 위해 대승적이고 전면적인 협력관계의 큰 줄기를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중 관계에서 동북 공정이 미친 악영향이 크다는 질문에 그는 “양국관계에서 가급적 감정을 배제하고 현안을 국내 정치화하는 일을 피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북공정 문제에서 분명히 잘못된 측면이 있었다고도 했다. 지난해 중국 지도부가 동북공정 연구 사업을 중단시킨 것을 염두에 둔 말인 듯했다.
그는 “중국은 한국과 평등한 차원에서 상생하고,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려는 대승적 차원에서 수교를 했고, 지금도 그 뜻에는 변함이 없다”며 “양국 사이에 흉금을 터놓고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1958년 베이징대학 조선어문학과를 졸업한 후 외교부에 들어가 반세기 가까이 한반도 문제를 다뤄온 장 부회장은 63년부터 89년까지 3차례 15년간 북한에서 근무했고 92년 수교 때부터 98년 8월까지 6년간 서울에서 초대 중국대사로 일했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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