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라는 여자가 우리 사회에 아주 큰 기여를 했다. 그녀가 학력을 속인 사실이 드러나 잠적한 이후, 주로 문화ㆍ연예계를 중심으로 가짜 학력의 가면이 계속 벗겨지고 있다. 저 사람도? 하는 의문이 드는 인물도 있고, '대체 누구를 믿어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든다.
무수한 신도들의 존경을 받아온 스님마저 가짜 학력을 내세워 활동해왔고, 이를 폭로하겠다는 협박에 시달리며 살아왔다니 기가 막힌다.
● 학력 위조자 아직도 많은 듯
말썽이 난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학위가 취소되거나 직위를 잃고 매장되고 있다. 몇몇 대학이 전 교원을 대상으로 학력 검증을 벌이고 있다.
대학교육협의회가 학력(학위) 검증센터(가칭)를 설립하겠다고 나설 만큼 학력사기의 파장은 크고 넓다. 학력 사기자들은 아직도 많은 것 같다. 외국에서 받은 박사학위를 신고하게 돼 있는 학술진흥재단에 취소를 요청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고 한다.
그런데 학력 위조의 파장이 커지면서 좀 이해하기 어려운 두 가지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첫째는 그들이 물론 나쁘지만 그렇게 되도록 만든 우리 사회가 더 문제라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학력지상주의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력 사기는 어디까지나 범죄행위다. 실정법 상 문제가 없더라도 자기 자신과 사회를 동시에 속이는 범죄다. 요즘 사회적 자본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국가ㆍ사회 발전의 촉진제로서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학력 사기는 대표적으로 사회적 자본을 허무는 일이다.
학위를 적극적으로 위조한 경우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나쁘다. 그러나 주변에서 잘못 말했거나 틀리게 소개한 학력을 그대로 둔 것도 사기의 범의(犯意)가 있다고 봐야 한다.
국무총리 인사청문회까지 거친 대학총장의 출신학교가 잘못 알려져 미필적 고의를 의심 받았던 일이 있다. 뉴욕의 이름 없는 대학인데도 뉴욕주립대 출신인 것처럼 행동한 사람도 있었다.
어떤 연예인은 대학 졸업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입학은 했는데 졸업을 못했다고 변명했지만, 입학 사실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두 번 거짓말한 것이다.
또 하나 이해하기 어려운 기류는 언론이 너무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 까발겨서 뭘 하겠느냐, 이게 무슨 공비 토벌작전이냐, 꼭 그 사람들을 매장하거나 파멸에 이르게 해야 하느냐…. 이런 매스컴의 태도야말로 성숙하지 못한 사회의 모습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학력 사기를 밝혀내는 것은 논문 표절 폭로와 다를 바 없다. 논문 표절보다 학력 사기는 더 나쁘다. 언론의 감시기능이 마땅히 정확하게 가동돼야 한다.
정작 걱정스러운 것은 호된 망신과 곤욕을 치르고도 얼마 안돼 사회적으로 복원되는 것이다. 대입시 예체능실기 심사에서 돈을 받아 형사처벌 받은 교수가 도로 똑 같은 자리에서 똑 같은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매장된 개인들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 정도로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백남준이나 테너 폴 포츠,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코코 샤넬과 같은 사람들은 한국에서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아니며 피나는 노력과 성실함으로 자기 세계를 일군 사람들이다. 학력의 포장과 힘에 기대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 스스로 고백하고 용서 빌어야
원래 상은 상을 부르고 벌은 벌을 낳는다. 그리고 유명해지면 모든 게 저절로 해결된다. 출석일수 미달이든 등록금 미납이든 무슨 이유에서든 주지 않던 졸업장도 유명해지면 학교측에서 먼저 갖다 바친다. 요즘은 모든 유명인사들을 '홍보대사'로 만드는 세상이다.
유명해지기 위해서 도덕적으로 노력하라. 반공 방첩시대의 표어에 '자수해서 광명 찾자'는 게 있었지만, 학력 사기자들은 정직하게 커밍아웃을 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래야 본인들도 편하고 사회도 편안해진다.
ycs@hk.co.kr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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