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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IB를 키우자] <1> 금융의 신 성장동력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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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IB를 키우자] <1> 금융의 신 성장동력을 찾아라

입력
2007.08.2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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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증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최근의 주가변동을 보면 더욱 더 그렇게 느껴진다.

건강한 투자은행(IB)을 갖는 것은 선진증시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 가운데 하나다.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으로 국내에도 글로벌 IB등장에 대한 기대감이 무르익고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과제는 한 두개가 아니다. 자본 인력 시스템 마인드까지 혁신적 손질이 필요하다. '한국형 IB'육성을 위한 세부방안을 집중 점검해본다. /편집자 주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미국 월스트리트를 넘어 세계 금융시장을 주무른다는 굴지의 금융 기관들이다.

이들은 투자은행(Investment BankㆍIB)이다. 하지만 말이 은행이지 우리 식으로 예금 받고 대출해주는 그런 은행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증권사라고 하기도 힘들다. 업종간 칸막이를 허물어 증권, 선물, 자산운용 업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IB는 사실 우리 자본시장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2009년1월이면 우리나라에도 IB가 활동할 법적 공간이 마련된다. 이름은 금융투자회사. 자본시장통합법 발효에 따른, 우리나라 증시역사상 혁명적 변화임에 틀림없다.

'토종IB'에 거는 기대는 대단하다. 정체 국면에 있는 국내 금융산업의 신(新)성장동력으로, 나아가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여는 디딤돌로 삼자는 것이다.

사실 국내 금융 산업은 외환 위기 이후 10년을 거치며 부단한 구조조정과 선진 금융시스템 도입으로 어지간한 외풍(外風)에도 견딜 수 있는 체력을 갖췄다. 문제는 한 단계 더 딛고 도약할 동력이 없다는 점이다.

예대금리 차이에 수익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은행이나, 위탁 매매 수수료에 기대는 증권사나 "이대로는 곤란하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있다.

외환 위기 이후 반도체 등 제조업이 국가 경제를 먹여 살렸다면, 이제는 금융산업이 바통을 물려 받아야 하는 요구가 빗발친다. 굴뚝 하나 없이도 전 세계 '머니게임'을 통해 천문학적 돈을 벌어들이는 골드막삭스나 메릴린치처럼, 우리나라도 IB가 국가적 '캐시카우'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시장통합법은 제도적 밑거름에 불과하다. 프로축구를 출범시켰다고해서 국내 축구가 곧 바로 프리미어리그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수와 감독의 육성, 그리고 구단의 적극적인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

IB도 마찬가지다. 자통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와 경쟁할 수 있는 IB가 저절로 키워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 위험을 떠안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환란을 겪으면서 국내 금융사들은 안전 위주의 보수적 영업에 치중해 왔다. '저수익-저위험'에 체질이 길들여 졌다. 굳이 위험을 떠안지 않아도 고객들의 주머니에서 이자로, 또 수수료로 쌈짓돈을 받아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IB는 기본적으로 '고수익-고위험' 업무다. 환란 경험을 토대로 지금까지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에 치중해 왔다면, 투자은행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리스크를 감수(risk-taking)하는데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외형확대도 선행돼야 한다. 현재 국내 대형 증권사의 자기자본 규모는 2조원 내외. 최소한 아시아권의 선도IB 입지를 굳히려면 일본 노무라증권이나 다이와증권의 자본 규모(6조원 안팎)는 되어야 한다. 물론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등 선진IB의 자기자본(30조~40조원) 정도는 엄두를 못내더라도.

인력육성도 필수다. 자본도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미국의 월스트리트를 만들어내 것은 아이비리그 MBA출신의 최고급 인재와 동물적 감각을 지닌 펀드매니저들이다.

어차피 돈을 굴리는 것은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김형태 증권연구원 부원장은 "규모가 확충되고 전문 인력이 영입되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서 국내 IB시장 규모가 확대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다시 자본을 늘리고 우수인력을 끌어들이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돈만 쏟아 붓는다고 제대로 된 IB가 탄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차근차근 단계별로 역량을 쌓아야 한다. 한국의 자본시장이 프리미어급으로 발돋움하려면 경기장시설(금융인프라) 못지 않게 선수(금융회사)도, 심판(감독당국)도 프리미어급이 되어야 한다.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은 "고졸 출신이 대학과 대학원을 거치지 않고 박사 학위를 딸 수 있겠느냐"며 "국내에서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IB 업무를 해나간 뒤에 아시아로, 세계로 영역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너무 조급하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느릿하지 않게 첫 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다. 분명히 잠재력은 충분하다.

■ 제임스 퀴글리 메릴린치 회장 조언

"한국 기업들을 상대로 IB역량을 쌓은 뒤 점진적으로 아시아, 그리고 세계로 나아가야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융통성을 최대한 발휘해야 합니다."

제임스 퀴글리(사진) 메릴린치 인터내셔널 회장은 "시간은 걸리겠지만, 한국의 IB 분야 잠재력은 충분하다"며 "서두르지 않고 바닥부터 다져 나간다면 한국에서 세계적인 IB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파장으로 눈코 뜰 새 없던 17일, 어렵게 시간을 낸 퀴글리 회장과 한국의 IB 발전 방향에 대해 전화 인터뷰를 했다.

_아직 한국에서는 IB의 개념조차 낯섭니다. IB란 무엇인지 쉽게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IB는 주식과 채권 등을 매개로 돈이 있는 사람(회사)과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연결해 주는 역할이라고 보면 됩니다. 돈을 필요로 하는 기업의 주식이나 채권 발행을 도와주고, 여기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이나 기업을 연결시켜 주는 것이죠.

이 같은 기본적인 업무 외에도 IB가 직접 자기자본을 투자하기도 하고, 헤지펀드 역할도 하고, 인수ㆍ합병(M&A)도 도와주는 등 업무 영역을 확대해 나가게 됩니다."

_한국에서는 이제 IB가 걸음마 단계입니다. 어떤 발전과정을 밟아야 할까요.

"우선 한국기업들을 상대로 IB서비스 기반을 닦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외 기업들이 한국에서 영업을 하면서 필요로 하는 IB수요도 충족시켜 줘야 합니다.

그 다음 단계가 아시아권을 대상으로 IB 영업을 하는 것이고, 마지막이 미국, 유럽 등 전 세계로 영역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너무 욕심을 내서 곧 바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하면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없습니다."

_한국에는 IB 전문 인력이 아직 부족합니다.

"IB는 전문적 인력 네트워크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인력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는 없겠죠. 메릴린치는 오래 전부터 교육(training), 영입(scout), 채용(recruiting)에 상당한 정성을 쏟았습니다. 아울러 인재를 끌어들이려면 좋은 기업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국내 각 금융회사들이 너도나도 IB 진출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각자의 특성에 맞는 IB 모델을 어떻게 개척할 수 있겠습니까.

"유명한 IB들을 보면 처음에는 주식, 채권 발행과 인수 업무에서 시작해서 M&A, 금융자문, 자기자본투자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갑니다. 처음부터 방향성이 정해지지는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느냐 입니다. 자신들의 고객들이 기업공개(IPO)를 많이 한다면 이에 치중해야 하고, 차입매수(LBO)에 많이 나선다면 여기에 주력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 고객이 누구이고, 고객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느냐에 답이 있습니다."

_IB가 성공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융통성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메릴린치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자 다른 IB들이 너도나도 뒤따라 왔습니다.

이 경우 메릴린치는 새로운 비즈니스나 상품을 개발해야 합니다. 이를 빨리 실행에 옮기려면 정부가 융통성 있게 신속하게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그것이 회사를 위해서도, 고객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입니다."

_마지막으로 한국 금융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IB가 출현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오랫동안 한국 고객들과 만나오면서 한국 사람들의 열정과 창조성, 자신감에 놀랐습니다. 인프라를 구축하고 기반을 닦는 것은 중요한 도전 과제이지만, 그 밑거름이 될 인력 네트워크는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역량을 닦아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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