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다음날인 5월17일(토) 저녁 이상옥 외무장관과 김종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 및 안기부 K 차장이 동해사업 실무반이 준비작업을 하던 동빙고동 안가에 와서 3자회의를 가졌다. 나는 동해사업 제1차 예비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회담의 분위기도 함께 전했다.
나는 우선 ‘하나의 중국’ 원칙문제를 언급했다. 중국측은 수교교섭의 기초로 이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고 한국측이 ‘하나의 중국’원칙을 수락하지 않는다면 중국측은 여타문제를 협의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당연히 한국과 대만은 단교를 하는 대신 경제 문화 등 비공식관계만 유지해야 한다는 점도 아울러 상기시켰다.
다음으로 정상회담 개최문제를 설명했다. 한중정상회담 역시 ‘하나의 중국’ 원칙이 타결된 후에야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 중국 입장이었다고 보고했다. 다만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 핵사찰을 수락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이라는 것이 중국의 입장임을 부연했다.
물론 중국이 남북한 합의에 의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는 사실도 세 사람 앞에서 설명했다. 그리고 중국측은 앞으로 2차례 정도의 예비회담을 더 열어 양측의 제기사항을 충분히 실무 검토를 한 뒤 6월 하순 본회담 개최를 희망한다는 점을 전했다.
내 보고를 들은 이상옥 장관은 2차회담까지는 베이징에서 갖되 3차회담은 서울에서 열고 그 뒤에 본회담에 들어가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김종휘 수석은 예비회담을 다음 한번으로 끝내고 예비회담에서는 대만문제를 논의할 권한이 없으며 빨리 본회담을 하자고 주장했다. 김 수석은 이와 함께 청와대 이용준비서관을 예비회담 대표로 포함시켰다.
결국 3자회의는 5월29일에 다시 한 번 열리는데 그 전에 실무반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제 2차 예비회담 대책을 철저히 준비했다. 5월29일 아침 7시30분 플라자 호텔 1170호실에서 이상옥 장관과 김종휘 수석 및 K 안기부 차장은 3자회의를 갖고 우선 제 3차 예비회담을 6월 2일과 3일 베이징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3차회담은 예비회담 겸 본회담으로 이어지는 방안을 검토하되 중국측의 자세를 보아가면서 현지에서 결정하도록 했다. 3자회의에서는 실무반이 보고한 ‘제 2차 예비회담 대책안을 토의한 후 ‘하나의 중국’원칙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가져가도록 결정했고 나머지 대책도 승인했다.
이상옥 장관은 예비회담대표단에 분명한 지침과 권한(clear mandate)을 주며 수교와 정상회담을 조기에 타결토록 모든 정지 작업을 끝내고 오라고 지시했다.
한중수교교섭은 정상적으로는 국무회의와 관계부처 협의 등 정상적인 정책결정 과정, 국회 보고와 토의내지 동의 등 국민여론 수렴과정을 거쳐야 할 중대한 외교사안이었다. 그러나 이런 정상적인 절차를 거칠 경우 수교교섭의 비밀이 공개된다.
공개 즉시 대만은 한국의 국회와 정치권 및 언론을 중심으로 막강한 로비를 펼쳐 한중 비밀수교교섭을 일시에 좌초시킬 충분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또 일부 언론은 대만과 완전히 단교를 하고 중국과 ‘하나의 중국’ 원칙으로 수교하는 데에는 반대하고 있었다. 즉 한중 수교교섭 사실이 보도되면 국민여론은 분열될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대만에 우호적인 시각을 가진 몇몇 언론사의 원로나 학계 인사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중수교에 반대하는 글을 신문에 게재하곤 했다.
한중 수교교섭이 공개될 경우 중국 또한 우리 못지않게 난처한 상황에 빠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무엇보다 북한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중국내 인맥을 총동원해 막강한 영향력으로 수교교섭을 중단시킬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
예컨대 92년 4월15일 양상쿤(楊尙昆) 주석이 김일성 생일에 가서 한중수교를 ‘고려하고 있다’는 중국의 분위기를 사전에 얘기하자 김일성주석이 2~3년 연기를 요청했다. 이후 북한은 중국에서 한중수교 교섭이 실제로 진행되는 정보를 입수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중국측은 철저한 보안을 지켰다.
이러한 전후사정을 고려할 때 한중수교는 비밀교섭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노태우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우선 사안이어서 청와대 비서실과 외무부, 안기부의 핵심 책임자로 구성된 소위 3자회의가 가동되고 외무장관이 실무반과 대표단을 지휘했다.
한중문화청소년협회(미래숲)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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