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될 줄 알았는데….” 6월 개인회생 면책신청을 할 때만해도 그랬다. 법원 직원은 “그런 서류는 받아본 적이 없다”며 돌려보냈다. 낙심했지만 법무사의 도움을 받아 다시 접수했다.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와 갑자기 찾아온 병마(病魔), 주저앉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불행은 외환위기와 함께 찾아왔다. 당시 회사원 박모(37ㆍ여) 씨는 명예퇴직한 오빠에게 사업자금으로 4,000만원을 빌려줬다. 빚으로 쌓은 오빠의 사업은 2년 만에 부도가 났고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등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박 씨는 이후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돌려 막기, 사채 끌어 쓰기 등으로 버텼지만 빚은 어느새 1억4,742만원으로 불어났다.
박 씨는 결국 2005년 1월 법원에 개인회생 신청을 했다. 빚 전체를 탕감 받을 수 있는 개인파산도 있었지만 그는 직장을 놓치기가 싫었고 자력으로 빚을 갚아나가고 싶었다.
그 해 9월부터 60개월(5년) 기한으로 매달 61만4,486원씩(월급은 120만원 수준) 26개월 동안 착실히 빚을 갚아나갔다.
그러나 올 2월 갑상선 암 진단을 받고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소득이 없어 개인회생 절차도 폐지될 위기에 놓였고, 다시 파산신청을 하거나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법무사를 통해 법률자문을 구하던 중 그는 다행히 ‘개인회생 면책신청’이란 답을 얻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변제기간 중이라도 구조조정이나 질병 등으로 인해 변제계획 변경이 불가피하거나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변제를 완료하지 못하거나 ▦현재 재산가치보다 지금껏 갚은 금액이 더 많으면 면책신청이 가능하다.
박 씨는 우여곡절끝에 선례가 없는 ‘개인회생 면책신청’을 법원에 내 결국 면책을 받았다. 그의 퇴사가 질병에 의한 것이고 현재 재산가치(299만원)보다 변제금액(1,597만6,000원)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는 2004년 9월 시행된 개인회생제도의 첫 수혜자가 됐다. 빚 전체를 탕감해주는 파산신청과 달리 개인회생은 다달이 빚을 갚아나가게 해 자력갱생을 돕는 재건형 프로그램이라 그 의미가 크다. 개인파산 면책결정 사례는 많았으나 개인회생 면책결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씨의 면책을 대행한 박춘제 로캠프법무사합동사무소 대표법무사는 “비슷한 경우에 대부분의 채무자는 면책신청 방법을 잘 몰라서 파산신청을 하거나 신용불량자가 된다”며 “개인회생을 택한 채무자들에게 박 씨의 사례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는 개인파산 신청건수는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게 12만2,628건으로 전년(3만8,773건)보다 3배 이상 늘었지만 스스로 빚을 갚아나가는 개인회생 프로그램 이용자수는 제자리 걸음이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