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남짓 영업용 택시를 몰고 있는 김정수(42ㆍ가명)씨는 날이 어두워지면 택시 앞 유리창에 ‘서울’이라고 적힌 작은 플라스틱 안내판을 붙인다. 차고지가 있는 ‘서울’로 가는 차’라는 의미다. 하지만 택시를 타고 내부에서 보이는 안내판 뒷면에는 휴대폰 번호와 함께 ‘꽝 없음’ ‘5회 시 상품권’ ‘00를 찾아주세요’ 등 이상한 문구들이 적혀 있다.
성매매 업소들이 음료나 사탕을 끼워 택시 기사들에게 뿌린 홍보물이다. 김씨는 “(성매매 업소를) 찾는 손님이 있으면 기왕 자주 가는 곳에 데려다 주고 업소로부터 알선비 명목으로 손님 1명당 만원씩 받는다”며 “손님이 없어 하루 사납금 9만4,000원 벌기가 힘든 요즘 같은 때는 이 일이 더 끌린다”고 털어놓았다.
일부 택시들이 성매매 업소와 공생 하고 있다. 택시 내부에 은밀하게 광고물을 부착해 손님 끌기에 앞장서는가 하면, 성 구매를 원하는 손님을 업소에 데려다 주고 해당 업소로부터 알선비 명목으로 수수료를 받아 챙기고 있는 것이다. 손님이 내는 택시요금은 덤이다.
■ 성매매 업소 광고하는 택시
택시에 뿌려진 성매매 업소들의 홍보물은 종류나 크기가 매우 다양하다. 또 각종 생활정보를 담고 있어 언뜻 보기엔 성매매 업소 홍보물인지 분간하기조차 쉽지 않다.
야릇한 사진이 들어간 달력, 서울ㆍ용산역 통합 열차 시간표 등에 업소 전화번호를 삽입한 고전적인 것에서부터 택시 앞 유리창에 붙이도록 고안된 ‘쉬는차’ ‘예약’ ’서울(행)’ 등의 흡착형 부착물, ‘금연’ ‘안전띠를 맵시다’ ‘교통위반신고전화 국번없이 120’ ‘분실물 신고전화’ 등 지정 부착물로 위장한 스티커에 이르기까지 종류는 손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이 중 하나만 붙이고 다녀도 운수사업법에 따라 과징금 20만원, 성매매 특별법에 따라 3년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특별법은 성매매 업소를 광고한 자도 성매매를 알선한 자와 같은 처분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성매매 업소 위치와 업소 삐끼들에게 손님을 인계하는 방법까지 적은 부채형 홍보물까지 등장했다. 성매매 업소로 출발하기 전 전화를 한 뒤 ‘두 번째 주차장에 들어와 손바닥을 펴주세요’하는 식이다.
■ 단속 손길 거의 없어
그러나 성매매 알선 택시들에 대한 단속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택시면허를 관리하는 서울시 등에 따르면 성매매 업소 홍보물을 부착한 택시나 성매매를 알선한 택시 기사를 적발해 처분을 내린 경우는 한번도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 택시만 7만1,000여대에 이르는데 단속 직원도 적어 1년에 한 번 서울택시운송사업조합과 공동으로 실시하는 ‘차량환경개선점검’ 때나 불건전 부착물 부착 여부를 점검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개인택시 기사는 “점검 날짜가 사전에 고지되기 때문에 그 전에 책잡힐 소지가 있는 부착물은 사전에 폐기 처리한다”며 “시의 부착물 점검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서울시택시운송사업조합 관계자는 “조합원(택시회사)에 불법 부착물 제거 공문을 보내고 회보, 홈페이지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공지하고 있다”며 “조합이 조합원을 단속해 관계기관에 고발하기란 사실상 힘들다”고 말했다.
정기 점검에서 지적사항이 나와도 조합은 시정조치와 재검통보를 하고 며칠 뒤 재검을 거쳐 합격 통보를 할 뿐 관할 구청 등에 따로 고발은 하지 않고 있다.
회사원 오치석(37)씨는 “홍보물마다 업소 위치와 전화번호가 나와 있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단속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며 “지금까지 단속 적발 건수가 전무하다면 택시회사와 서울시, 경찰이 ‘검은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의혹을 살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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