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은 스스로를 ‘진정한 시장주의자’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 당시 재벌 소유 금융회사의 계열 분리 청구제 도입을 강력히 밀어 붙였고,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재직 당시에는 생명보험사 상장 문제를 두고 삼성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던 그였다.
적어도 재벌 문제에 관한 한 초강성인 그가, 시장이(정확히 표현하자면 재벌이) 매우 껄끄럽게 생각하는 그가 자신을 시장주의자라고 정의하다니…. 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단서가 붙어 있다. 진정한!
이 같은 인식의 저변에는 역대 관료 중 가장 시장주의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나 윤증현 전 금감위원장이 결코 시장주의자일 수 없음을 강변하고 싶은 듯했다.
취임 1개월을 맞은 이동걸 원장은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 대출) 사태에 따른 증시의 패닉 현상과 금산분리 완화 문제 등에 대해 소신을 피력했다.
기관장이 아니었다면 더욱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을 그였지만, 무거워진 책임감 탓인지 민감한 사안에는 되도록 말을 에두르는 모습도 보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장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제2의 환란을 우려하는 국민들도 많습니다.
“극장에 불이 났습니다. 모두 우왕좌왕 도망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타 죽는 사람은 없더라도 깔려서 죽는 사람들로 사고가 커지게 됩니다.
본질은 전체 모기지 시장의 1%도 안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있습니다. 문제는 불안심리의 확대와 확산입니다. 이것만 없으면 본질(부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공포에 깔려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 그것이 정책 당국의 역할입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 경제 체질은 이 정도의 외부 충격을 충분히 흡수할 여력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완고한 금산분리 옹호론자이십니다. 반대론자들은 금산분리가 완화돼도 금융감독이 제대로 이뤄지면 재벌의 사금고화 우려는 없다고 주장하는데요.
“열 포졸이 한 명의 도둑을 잡지 못하는 법입니다. 백 보 양보해서, 재벌 사금고화 가능성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칩시다. 우리나라 재벌은 금융회사를 지배구조 강화의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금산분리 완화론자들은 산업자본이 은행을 인수하면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왜 현재 재벌이 소유하고 있는 보험사나 증권사는 국제적인 회사로 크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금융지주 민영화의 해법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어줍지 않은 민족 정서나 반(反) 글로벌 정서에 편승해서 매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국민은행의 외국인 지분이 80%에 육박한다고 외국계 은행입니까?
단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투자를 외면해서 외국인 지분이 높아진 것일 뿐, 그들은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는 재무적 투자자일 뿐입니다. (그는 구체적인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최근 은행권의 과도한 주식매입선택권(스톡옵션)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정서적인 반응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시스템이 잘못 됐으면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은행장 스톡옵션이 100억원이면 과도한 것이고 10억원이면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한 가지 분명히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철저히 성과에 따라 스톡옵션이 부여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필요하다면 1,000억원 혹은 2,000억원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적법성을 두고 사법적인 판단이 진행 중입니다. 금감위 부위원장 재직 당시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승인이 이뤄졌는데요.
“당시 외환은행을 사려고 했던 곳이 아무 곳도 없었습니다. 이제 와서 외환은행이 정상화되니까 론스타가 차익을 많이 남겼다고 배 아파 하는 격입니다.
당시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팔면 국내 은행이 론스타를 다시 사들일 수 있다는 판단도 했습니다. 토종은행 주창자들에게도 전략적 은행에 외환은행을 넘겨 ‘영원한 외국계 은행’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일시적으로 론스타에 넘겨 국내 은행이 다시 인수할 기회를 남겨 놓은 것이 다행스러운 일 아닙니까.”
-금융연구원의 정부나 은행 편향성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연구원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실 계획이십니까.
“연구원은 최근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당시 증권사 지급결제 허용을 적극 반대했습니다. 지급결제수단은 은행의 고유영역이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더 강하게 반대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소신을 굽혀 가며 연구를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연구원의 가장 큰 과제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슈를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 학계, 언론 등과의 폭 넓은 대화 채널을 만들어 의사 소통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이동걸 프로필
▦ 1953년 경북 안동생
▦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예일대 박사
▦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 한국금융연구원 은행팀장
▦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
▦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2003.3~2004.8)
▦ 한국금융연구원장 (2007.7~)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사진=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