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에 쓴 장편 <깊은 슬픔> 에서 죽은 은서가 아직도 떠올라요. 그렇게 죽게 했어야 했나 싶어 작년 개정판을 낼 때 결론을 고칠까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랬는데 리진까지 죽음으로 내몰고 나니 여태껏 일손이 안 잡히네요.” 깊은>
장편소설로서 6년 만에 발표한 <리진> 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소설가 신경숙(44)씨가 작품 낭독회를 가졌다.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18일 강남 교보문고에서 열린 행사엔 연극배우 김지숙(51)씨가 낭독자로 자리를 함께 했다. 리진>
김씨는 “여성 작가가 쓴 역사소설이라 그런지 선이 굵은 남성 작가의 작품과 달리 역사와 인물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는 감상과 함께 <리진> 중 세 군데를 발췌 낭독했다. 리진>
<리진> 은 2대 주한 프랑스 공사의 1905년 회고록에 짧게 언급된 ‘조선 궁중무희’ 관련 내용을 모티프로 삼고 있다. 초대 프랑스 공사와 혼인해 파리로 갔다가 귀국 후 자살한 이 여인의 운명에 끌려 첫 역사 소설에 도전한 신씨에게 자료 취재는 지난하면서도 신나는 과정이었다. 리진>
“회고록 대로 리진이 현지인도 황홀해 할 만큼 불어를 잘했던 이유를 찾던 중, 선교사로 조선에 왔던 블랑 주교가 불한사전 필사본을 지녔다는 기록을 발견하곤 크게 웃었지요.” 리진이 어린 시절 블랑 주교를 만나 사전을 건네 받았다는 설정은 여기서 나왔다. 신씨는 “지금이라도 리진이 남긴 기록을 찾아 상상으로 쓴 내 글과 비교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설에서 리진은 명성황후를 지칭하는 ‘왕비’와 모녀 같은 관계를 맺는다. 신씨는 “왕비는 당대 권력자이자 가슴 아픈 최후를 맞은 존재여서 객관적으로 보기 힘든 인물”이라며 “작가로서 왕비에게 권위보다는 내면을 부여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리진보다 왕비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는 독자의 질문엔 “리진이 아름다운 궁중무희니까 ‘왕의 여자’가 되는 뻔한 설정을 피하려다보니 왕비를 만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이 전반적으로 슬프다는 지적에 신씨는 “슬픔을 주려고 소설을 쓰진 않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을 간곡하게 전하려다 보면 슬픔과 닿게 되는 지점이 많다”고 답했다. 그는 “연못에 던진 돌은 가라앉지만 파문은 계속 이어진다”며 “돌을 던진 것은 작가지만 작품을 해석하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란 말로 낭독회를 마쳤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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