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대부분을 언론에서 보내다 1년 여 전 기업 임원으로 옮겨간 친구가 말했다. "주로 고위 공직자만 상대하던 기자 시절엔 몰랐는데, 기업에 와 보니 공무원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더라고. 사무관 정도의 눈 밖에만 나도 되는 일이 없어.
명백히 정부가 도와줘야 할 일인데도 괜히 트집을 잡는 거야. 그저 머리를 조아리는 게 최선이더군. 요즘 대선캠프로 몰려가는 전ㆍ현직 언론인들이 많던데, 나도 줄 한번 잘 서서 정치나 한번 해야겠어. 공무원들이 그나마 조심하는 집단은 국회의원밖에 없는 것 같아서…"
언론에 있다가 이런 저런 경로로 2~3년 정부에 몸담았다가 유수한 민간기업으로 다시 옮긴 후배 두 세 명이 모였다. 공무원으로 정착한 친구도 함께 했다.
"내용을 일일이 밝힌 순 없지만 배짱 편하기론 공무원이 최고예요. 혁신이다 뭐다 해서 업무가 좀 빡빡했으나 자기 일만 잘하면 크게 눈치볼 일도 없고. 재벌회사나 공기업의 보수나 복지가 좋다고 해봐야 공무원의 권력에 비하면 한 수 아래죠. 또 그 사회가 묘해서, 한번 몸 담은 사람은 끝가지 챙겨주는 의리도 끝내주죠. 밖에 나가면 관 출신이라고 우대 받고…"
● 관료집단 이용한 날선 언론통제
직업공무원들이 들으면 과장되고 왜곡된 얘기라고 항변할 것이다. "공직사회에도 경쟁의 논리가 도입돼 과거와 같은 좋은 시절은 지나갔다"는 말도 할 법하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 하위직에까지 지원행렬이 구름처럼 늘어서는 세태는 이들의 주장을 단숨에 뒤집는다.
고용 안정이 시대의 화두로 등장한 상황이니, 확실한 신분 보장과 달콤한 보수ㆍ복지에다 안정된 노후를 세트로 제시하는 이 직종의 매력은 갈수록 유혹적이다.
참여정부에선 권한과 역할까지 커졌다. 한때 공직사회를 개혁 대상으로 여기던 정권이 공무원 집단을 최대 우군으로 삼은 덕분이다. 공무원은 산업화의 숨은 주역일 뿐아니라 민주화에도 일조한 공신이며, 이젠 특권 및 반칙을 일삼는 세력과 싸우는 전사가 됐다.
그 선두엔 '일하는 정부'를 기치로 든 노무현 대통령과 '코드'를 신주단지처럼 받드는 친위그룹이 섰다. 이들은 자기 주머니 털지 않고도 세를 확장하는 방법을 금방 알아챘다.
2002년 정권 출범 이후 최근까지 6만명 이상 늘린 공무원이 그들이다. 국무회의가 열리는 매주 화요일만 되면 공무원을 충원하는 장터가 섰다.
정권의 모토가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되돌리기 힘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면, '정부 몸집 불리기'는 부동산정책이 감히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성공한 셈이다. 제돈 나가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 거대한 집단의 저항을 무릅쓰면서 '작은 정부' 운운할 권력이 없겠기에 하는 말이다.
변죽만 울리다 결국 손도 못 댄 공무원 연금이나, 공무원 노조가 교섭안으로 내놓은 황당한 요구만 봐도 금방 아는 사실이다. 괜한 수고를 하느니 차라리 이들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일꾼의 자세를 잃지 않도록 고무하고 견제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다.
그런데 정권이 국민의 견제와 감시라는 최소한의 장치로부터도 공무원을 해방시켜 주겠다고 또 한 번 선심을 썼다. 그랬더니 권한과 눈치를 키워온 부처마다 물 만난 고기마냥 언론을 가두고 막고 제한하고 내쫓느라고 야단이다.
그것이 취재지원을 선진화하는 방안이란다. 인권과 민생에 가장 취약한 경찰은 차제에 언론을 아예 내몰자고 작심했고, 새 원장이 부임한 금융감독원은 엘리베이터까지 차단하며 시장감독보다 언론감독에 더 열심이다. 외교부의 관심은 아프간 인질이나 남북 정상회담보다 통합기자실 조기 완공에 쏠려 있다.
● 자존회복 결기 없으면 치욕뿐
바야흐로 '공무원의, 공무원에 의한, 공무원을 위한'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공직사회의 충성심으로 권력을 강화하려는 정권과, 자신들만의 먹이사슬 세계를 감추려는 관료집단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그러나 이런 세상은 결코 오래갈 수 없으며, 필연적으로 '언론 없는 정부냐, 정부 없는 언론이냐'는 골치 아픈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사회와 언론은 이 질문을 외면해선 안 된다. 잃을 것은 치욕이요, 얻을 것은 자존이므로.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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