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로버츠 지음ㆍ황의방 옮김 / 까치 발행ㆍ445쪽ㆍ1만3,500원
1821년 6월 이탈리아 남부 베수비오 화산.
금방이라도 불꽃이 일어날 것 같은 열기로 뜨겁지만 제복을 입은 일군의 무리들이 산을 오르고 있다. 근사한 제복을 입고 다소 구부정한 모습으로 등정에 나선 이 남자. 불에 달구어진 용암이 탁탁 튀는 소리에도 흐트러짐 없이 산을 올라가는 이 용감한 남자는 영국 해군 장교 제임스 홀먼. 그는 눈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시각장애인이라면 구걸로 연명하거나 정신병원에 수용되던 19세기초. 홀먼은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를 누볐다. 그가 여행한 지역은 모든 대륙을 망라했다. 러시아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브라질 인도 중국 등 200여 문화권이 넘는다. 1857년 70세로 숨질 때까지 그가 여행한 거리는 지구 한 바퀴 거리에 해당하는 40만 킬로를 육박할 정도다.
죽을 고비를 넘긴 것도 수차례. 실론섬에서는 미쳐 날뛰는 코끼리와 사투를 벌였고 흑한의 시베리아에서는 차디찬 감옥에 투옥됐다가 살아남았다. 그가 남긴 학술적인 성과도 무시할만한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페르난도 포 섬에서는 원주민들의 어휘사전을 펴냈고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동ㆍ식물 자료는 당대 과학자들의 주요한 연구자료로 쓰였다. 찰스 다윈은 <비글호의 항해> 에서 그를 ‘인도양 동물 분야’ 의 권위자로 칭했을 정도다. 비글호의>
1819년에서 1932년 사이에 펴낸 여행기로 홀먼은 유명세를 얻기도 했지만 그는 유명해진 만큼이나 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인멸됐다. 1910년 브리태니커 사전에서 그에 대한 기록은 단 하나의 문장으로 줄었고 1960년대에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오랜 동안 망각의 늪에 묻혀있던 그의 이름을 불러낸 눈밝은 이는 미국인 제이슨 로버츠.
도서관 한 구석에 꽂혀있던 <괴팍한 여행가> 에 실린 홀먼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 그는 각국을 돌아다니며 낡은 항해일지와 비밀문서를 수집했고 끈질긴 추적 끝에 한 위대한 인간의 이야기를 복원해냈다. 괴팍한>
그런 의미에서 이책 <세계를 더듬다> 이 사람들에게 준 희망, 그리고 갈채는 두 사람 모두 돌아가는 것도 좋겠다. 시력이 온전했던 어떤 여행가 못지않게 총명하고 용감했던 한 탐험가와 추적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전기작가 모두에게 말이다. 세계를>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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