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전 최고위직 공무원의 부인이 골프 라운딩 도중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는 바람에 하루 종일 절룩거리고 다녔다며 대학병원을 찾았다. 그녀의 병명은 서혜부(샅)의 정맥이 좁아지는 ‘하지(下肢)대정맥 폐색증(閉塞症)’. 하지대정맥 폐색증이란 운동을 할 때 서혜부에 있는 대정맥 혈관이 좁아져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 통증ㆍ경련ㆍ피로감 등이 생기는 증상이다. 평소에는 혈관에 혈액이 충분히 공급되므로 별 이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한 제약회사 최고경영자는 얼마 전부터 발기부전개선제를 매일 빼먹지 않고 복용한다. 폐동맥 색전증(塞栓症)의 우려가 있어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폐동맥 색전증은 다리의 대정맥에 생긴 혈전(핏덩어리)이 떨어져 나와 폐동맥의 혈관 가지를 막는 질환이다. 이처럼 가느다란 폐동맥 가지를 핏덩어리가 꽉 막고 있으면 그 부위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폐 조직이 상하는 폐 경색이 생긴다.
식생활이 서구화됨에 따라 동맥이 좁아지거나 막히는 동ㆍ정맥 폐색증이나 색전증이 급격히 늘고 있다.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가운데, 이 같은 혈관 이상으로 생긴 순환기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암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정도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사망자 24만 6,000명 중 혈관 이상으로 인한 사망자가 5만명(20.6%)으로 암 사망자(6만5,000명)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하지 동맥이 막히면 다리에 심한 통증이 나타나고 혈관을 통해 영양분이 공급되지 못해 살이 썩을 수도 있다. 또한 창자 동맥이 막히면 창자가 썩고, 신장 동맥이 막히면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며, 뇌로 가는 동맥이 막히면 뇌졸중을 일으키거나 사망하게 된다. 심장의 관상동맥이 막히는 심근경색의 경우 심한 가슴의 통증과 함께 급사의 원인이 된다.
이 같은 동맥이 막히는 동맥 폐쇄증은 주로 40대 이후에 발병한다. 노화현상으로 생기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동맥 경화가 더 큰 원인이다. 동맥 경화란 탄력성 있던 동맥벽이 점차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말한다.
하지 동맥이 막히면 처음에는 불과 몇 백m 걷는 데도 여러 번 쉬어야 할 정도로 힘이 든다. 그러다가 점점 움직이지 않고 있을 때에도 생활하기가 불편할 정도로 다리가 아프며 급기야 발가락부터 썩기 시작한다.
창자에 있는 동맥이 막히면 식사 때마다 복통이 생기고 소화기능이 떨어지며 몸무게가 줄다가 결국 영양실조에 빠진다. 뇌로 연결되는 경동맥(목동맥)이 막히면 가벼운 중풍이 생기며 심하면 전신이 마비되고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심장의 관상동맥이 막히면 가슴 통증, 호흡 곤란, 부정맥 등 다양한 증세가 나타난다.
치료법으로는 혈전을 녹이는 와파린ㆍ헤파린 같은 항응고제나 항혈전제를 투약하거나, 특수 금속 철망을 혈관 내에 주입하는 스텐트 시술을 하거나, 수술을 통해 막힌 부위를 피해서 피가 흐를 수 있도록 혈관을 연결해 주는 방법 등 다양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평소 혈관이 막히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금연, 절제된 식생활, 적절한 운동 등으로 성인병을 예방하고 당뇨병ㆍ고혈압 환자는 적절한 악물 치료 등을 통해 동맥경화가 진행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도움말=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하종원 교수, 심장혈관외과 장병철 교수, 삼성서울병원 혈관외과 김동익 교수
권대익기자 d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