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부터 서울 성수동에서 인쇄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장호철(50) 사장에게 외국인 노동자는 구세주다. 일손 부족으로 밥 먹듯 제품 납기 시한을 맞추지 못해 항상 부도 위기에 처했던 그의 공장은 2004년 여름 필리핀 근로자 3명을 고용하면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장 사장은 “어렵게 일감을 따 와도 냄새 나고 힘든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며 “밤 새는 것도 마다 않고 열심히 일해 준 이 친구들 덕분에 공장이 이제 먹고 살만 해졌다”고 말했다.
건설현장 일자리를 얻기 위해 새벽 인력시장을 기웃거리는 김성호(42ㆍ가명)씨는 “이 달들어 일 한 날이 5일도 안 된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인건비 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밀려 일자리 찾기가 어려운 마당에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공치는 날이 더 많아졌다.
김씨는 “인력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부류는 조선족을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들”이라며 “내국인들이 이렇게 외국인들한테 일자리를 뺏기고 있는데도 정부는 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기업이 외국인 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게 한 고용허가제가 17일로 도입 3년을 맞는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근로자의 권익을 향상 시키고 기업의 인력난 해소에 도움을 줬다. 반면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등 부작용도 커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15일 유길상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의 ‘고용허가제 시행 3주년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고용허가제는 체불임금 감소 등 외국인 근로자의 근로 조건 향상에 기여했다.
유 교수가 외국인 근로자 고용 사업장 300곳과 외국인 근로자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01년 산업연수생 제도(기술 이전을 목적으로 외국인을 고용) 하에서 36.8%였던 체임 경험 비율은 올해 9%로 크게 줄었다. 인권 침해를 받았다는 응답은 6.7%에 불과했다.
임금 역시 유사 업무를 하는 내국인의 86.7%로, 이들의 노동생산성(89.7%)을 감안하면 차별은 거의 없었다. 외국인을 고용한 사업주의 만족도도 높았다.
그러나 외국인 근로자 유입으로 인한 내국인 일자리 감소가 새로운 문제로 불거졌다. 고용주들의 11%는 고용허가제로 외국인이 내국인 일자리를 잠식했다는 데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고용주 4명 중 1명(24.7%)은 ‘외국인 고용이 내국인의 임금 등 근로 조건을 크게 또는 다소 악화시켰다’고 답했다.
특히 재중동포가 많이 일하는 건설업에서는 고용주의 40%가 내국인 근로조건 악화에 동의했다. 기업주들이 임금이 싼 외국인을 선호하면서 일자리에 위협을 느낀 내국인이 어쩔 수 없이 임금 삭감 등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포항건설노조와 울산건설플랜트노조 등이 단체협상에서 ‘외국인 근로자 채용금지’ 조항을 관철한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전국건설산업노조의 최명선 정책국장은 “내국인과 외국인의 일자리 충돌을 노노(勞勞) 갈등으로 보면 해법은 요원하다”며 “정부가 정책적으로 기업이 내국인과 외국인 근로자의 적정 비율을 유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고용허가제란
기업이 외국인 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인권 유린 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은 산업연수생 제도의 대안으로 2004년 8월 도입했다. 내국인과 동등하게 산재보험 최저임금 퇴직금 등을 보장 받는다. 5월말 현재 고용허가제로 취업한 외국인인 16만2,193명이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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