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좋게 섞인 칵테일 한 잔은 무거운 위스키, 혹은 거품으로 덮인 가벼운 맥주로 만족할 수 없는 여성을 달래기에 적당한 술이다. 팝페라(팝+오페라)가 그렇다.
오페라의 중후함은 부담스럽고, 가요의 대중성에는 성이 차지 않는 여심을 녹이는 매력이 팝페라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런 이유로 팝페라 가수는 여성, 특히 인생의 단맛뿐 아니라 약간의 쓴맛을 느끼기 시작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게 크게 호소한다.
크로스오버 테너 임태경(35)은 해변에서 맛보는 칵테일처럼 맛깔나게 노래를 부르는 팝페라 가수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그의 인기는 충분히 설명된다. 하지만 그는 가수로만 불리는 것을 부정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전야제 때 소프라노 조수미와 공연해 인정받기 시작한 그는 지난 5년 동안 어느새 실력있는 뮤지컬 배우라는 또 다른 명함을 갖게 됐다.
요즘은 라디오 DJ(KBS FM ‘세상의 모든 음악’)로도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9월 시작하는 뮤지컬 <스위니 토드ㆍsweeney todd> 공연을 앞두고 누구보다 땀흘리며 여름을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스위니>
임태경의 이력은 조금 복잡하다. 서울 예원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한 이후 줄곧 음악을 붙들고 청춘을 보냈지만, 생산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엄연한 공학도 출신이다. 공학석사와 가수라는 어찌보면 어울리지 않는 길을 교차한 사연은 이렇다.
“공학을 공부하다가 입대 신체검사를 받던 중 어렸을 적에 백혈병을 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저는 운좋게 완치됐지만, 그렇지 못하고 힘든 삶과 싸워야 하는 어린 환자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때부터 음악에 몰두했습니다.”
2004년 1집 앨범 를 비롯한 그의 노래는 풍부한 성량과 가사를 곱씹는 듯한 가창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문득 노래를 잘 부르는 단순한 비결이 궁금했다.
“노래도 스포츠와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포즈를 유지하면 의외로 좋은 발성이 됩니다. 그 다음은 자신감입니다.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부르지 않으면 소극적인 발성이 됩니다. 그리고 가사를 음미하세요. 음치와 박치만 있는 게 아닙니다. 노래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감(感)치’도 노래를 못하는 사람입니다. 가사와 자신의 경험을 적절히 비교하며 노래를 부르면 누구나 감동할 만한 발성이 됩니다.”
임태경은 한눈에 볼 때 연초보다 살이 많이 빠져 있다. ‘안소니’라는 이름의 선원 역을 맡은 <스위니 토드> 에서의 연기가 큰 부담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스위니>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를 공연하면서 10㎏ 가량 뺀 살이 다시 돌아오지 않아 고민입니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한 성격 탓에 살이 빠지는 것 같아요. <스위니 토드> 는 어려운 작품이지만 마치 잘 만들어진 스위스 시계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걸작입니다. 곳곳에 작곡ㆍ작사를 맡은 스티븐 손드하임의 치밀한 계산이 숨겨져 있는 어려운 작품이죠. 대부분 빠른 곡에 익숙해야 하는 역할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이 배우로 한 단계 올라서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로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스위니> 지저스>
팝페라 가수로, 뮤지컬 배우로, DJ로 장르의 경계를 바쁘게 넘나드는 그는 요즘 2집 앨범 제작과 내주 시작하는 대학로 ‘나눔 콘서트’ 준비까지 겹쳐 있다. 몸은 피로로 지쳐있지만 눈은 빛난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전사(Warrior)’ 입니다. 먼저 가는 사람이 없는 길을 직접 만들고 헤쳐나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도전이 즐겁습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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