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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색깔있는 영화보기] 관타나모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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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색깔있는 영화보기] 관타나모로 가는 길

입력
2007.08.1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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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둔자와 갇힌자, 누가 진짜 나쁜사람인가?

최근에 읽은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 의 주인공 바리는 일곱 자매 중 막내로 남조선으로 도망간 삼촌 때문에 홀홀단신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을 거쳐 영국까지 흘러 들어가게 된다.

영국으로 밀항하는 과정에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정도의 지옥의 여정을 거친 그녀. 영국에서 택시기사 알리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지만, 이번에는 그 알리가 동생을 찾으러 간다고 파키스탄으로 길을 떠났다 그만 쿠바의 미군기지 관타나모에 수감되고야 만다.

갑자기 마이클 윈터바텀의 영화를 이야기하는데 왜 황석영 소설이냐고 물으신다면, <바리데기> 에는 원터바텀이 연출하고 상을 탄 두 편의 영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윈터바텀의 전작 <인 디스 월드> 에서 파키스탄의 아프간 난민캠프에서 사는 자말은 마치 바리가 그러했듯 사촌형 에이나트와 런던까지 지옥의 밀항을 결행했었다. 이란, 터키, 이탈리아, 파리, 런던의 낯선 땅에서 만난 사람들은 에이나트의 소중한 워크맨을 뺏고, 공장에서 중노동을 시키고, 숨막히는 배의 화물칸 안에 가두어 버렸다.

한마디로 <관타나모로 가는 길> 이나 <인 디스 월드> 그리고 황석영의 <바리데기> 를 관통하는 어떤 이념이 있다면 그것은 '세계화'가 혹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이 땅의 하위주체 혹은 제3세계에 가지고 오는 불행과 수탈의 ‘추적 60분’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다큐멘터리 수법을 사용한 <관타나모로 가는 길> 은 당신에게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 부시가 나와서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들이 나쁜 사람인 것이다”라고 확언했던 그 '나쁜 사람'이 과연 낯선 타국까지 신부감을 얻으러 갔던 이들, 순진한 영국계 파키스탄 청년들이었냐고.

영화는 내내 그들이 어떻게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탈레반의 전투에 휩싸이고 마침내 포로로 사로잡혀 쿠바까지 가게 되었는지, 그 긴 여정을 불쑥불쑥 끼어드는 청년들의 고증과 마치 그 고증을 말 그대로 번역한 것처럼 보이는 사실적인 화면의 연속으로 예증한다.

특히 모진 고문과 협박과 취조를 일삼는 미군들을 잡을 때는 마치 누군가 몰래 카메라를 숨겨 들어가 미군들의 잔혹행위를 숨죽이며 찍은 것 같은 연출로 정말로 영화를 사실 그 자체로 믿게 만든다.

결국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너무 멀고, <인 디스 월드> 의 길은 자그만치 6,400km에 이르며, 바리의 여정 역시 이승을 타승으로 바라볼 만큼 험한 지옥의 여정이었다. 이제 2000년 들어 전 세계 작가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어떤 문제 중 하나는 세계화의 어두운 그늘, 그로써 빚어지는 약자들의 이동 문제, 디아스포라(분산, 이산)인 것이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이 그들은 한 목소리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인간 이하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방법에 대해, 정녕 우리에게 한국인이 아니라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가슴 깊숙이 질문한다. 희망을 강요하지도 않으면서도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절망에 도전하는 윈터바텀의 영화들.

베를린영화제는 <인 디스 월드> 에 이어 다시 한번 윈터바텀에게 은곰상을 바치는 것으로 이 용감한 작가에게 허심탄회한 헌사를 했다.

영화평론가ㆍ대구사이버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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