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만으로도 할아버지의 뜨거운 가슴을 느낄 수 있어요.”
광복절 예순 두 돌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10시30분(한국시각 오전11시30분). 중국 베이징 시내 한복판인 중신은행(中信銀行ㆍCITIC) 건물 2층 커피숍에서 1930년대 조국을 되찾기 위해 중국 대륙을 누볐던 독립운동가 두 명의 후손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한 편에는 님 웨일스의 ‘아리랑’으로 유명한 김산(본명 장지락ㆍ1905~1938) 선생의 외손자이자 재중동포인 고우원(高雨原ㆍ35ㆍ중신은행 재무관리부)씨가 나왔고, 다른 쪽에는 조선공산당(일명 ML당) 김철수(金綴洙) 책임비서의 외고손자 정윤환(25ㆍ서울시립대 경영 4년)씨가 앉았다.
정씨는 고씨를 만나기에 앞서 이달 7일부터 운암(雲巖) 김성숙 기념사업회(이사장 이수성) 주최 ‘제2기 운암 김성숙 항일 유적지 중국 탐방단’의 일원으로 상하이(上海)와 난징(南京), 우한(武漢) 충칭(重慶) 등에서 할아버지 세대의 항일운동 지역을 돌아봤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동질감 때문일까. 초면인데도 고씨와 정씨는 한국어와 중국어 통역 외에도 영어를 섞어가며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두 후손은 사회주의 진영에서 활동했다는 이유 만으로 할아버지들이 한반도 남녘에서 오랜 세월 ‘빨갱이’로 낙인 찍혔다가 뒤늦게 역사적 재조명을 받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산과 김철수를 비롯한 사회주의 계열 47명은 2005년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 받아 서훈에 추서됐다.
정씨는 “할아버지도 백범 김구 선생처럼 훌륭한 독립투사였지만 교과서에서 이름 한 줄 찾아볼 수 없어, 손자인 나도 서훈에 추대될 때까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후손들이 추모사업회(회장 정진석)를 만들어 기념묘비를 세우려고 했으나, 보수 진영에서 ‘비석을 파괴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크게 반발했다”고 덧붙였다. 광복 60년이 지났건만, 좌우대립의 앙금은 여전한 것이다.
정씨와 달리 중국에서 자란 고씨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변방의 혁명가로 푸대접 받은 것이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는 외조부 김산에 대해, “역사적으로는 공산주의 국제주의자로서 국제 연대와 세계 평화를 사랑한 한 사상가로 요즘 젊은이들도 본받을 점이 많다”고 말했다.
고씨와 정씨는 할아버지 세대의 뜨거움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 서로 노력할 것도 약속했다. 고씨는 “재중동포 3, 4세들은 한국어를 거의 모른다”며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부터 한국인으로서 우리말을 모르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고씨는 정씨가 주도하는 항일 유적지 탐방단에 대해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앞으로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베이징=이현정 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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