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을 다시 불러와야 하는 것 아닌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야기된 금융시장 불안이 세계 증시의 동반폭락과 글로벌 신용경색 조짐으로 비화된 지난 주말, 뉴욕 월가에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경제이론이나 통계수치보다 직관과 카리스마를 무기로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던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은행(FRB) 의장에 대한 향수이자 벤 버냉키 현 의장에 대한 실망감의 표시다. 그린스펀이라면 2월 문제가 불거졌을 때, 어떤 식이든 손을 써 지금 같은 시장혼란을 막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 이번 사태는 1998년 여름 헤지펀드의 일종인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의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위기와 종종 비교된다.
월가의 스타였던 존 메리웨더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런 숄스 등과 손잡고 설립한 이 펀드는, 소위 '무위험 차익거래'라는 새로운 금융기법을 앞세워 러시아 국채를 기초로 한 파생상품에 투자하다 러시아의 돌연한 모라토리움(지불유예) 선언으로 1,000억 달러대의 손실을 입었다.
당시 그린스펀은 서둘러 금리인하를 단행하고 은행들의 손을 비틀어 36억 달러대의 유동성을 지원, 사태를 진정시킨 일화로 유명하다.
▦ 버냉키로선 시장의 성급한 평가가 서운하겠지만 그럴 여지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서브프라임 부실이 경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소신에 따라 "지금 가장 큰 관심은 성장둔화 위험보다 인플레이션"이라며 재앙이 발생하기 불가 하루 전 연방금리를 동결한 까닭이다.
그러나 프랑스 최대은행인 BNP파리바의 펀드환매 중단조치가 나오며 세계 금융시장이 공황상태로 치닫자, 그도 이틀간 600억 달러를 넘는 유동성을 긴급지원하는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경제의 기초체력과 무관한 응급처방이라지만, 이미 '실기(失機) 논란'에 휩싸이며 체면은 크게 구겼다.
▦ 국내에선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등 금융통화위원들이 머쓱한 처지가 됐다. 시장의 예상과 달리 6년만에 2개월 연속 콜금리를 올리는 강수를 뒀는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식으로 국내 금융시장이 서브프라임발(發) 후폭풍을 맞아서다.
한은은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클수록 과잉 유동성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실물경제를 안정시켜 놓아야, 조만간 닥쳐올 대내외의 불안요인에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글로벌 위기상황이 하루만 빨리 터졌어도 같은 결정을 내렸을지는 의문이다. 금통위의 금리인상 결정이 과연 약일까, 독일까.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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