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학력(學歷) 소동이 잇따르고 있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 위조 사건을 계기로 어느 정도 가짜 학력 색출 신드롬이 번질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거셀 줄은 솔직히 몰랐다. 눈물의 고백 등 다양한 '커밍 아웃'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명지대 정덕희 교수도 고졸로 밝혀졌다.
● 어떤 거짓말도 안 된다
정 교수는 방송통신대와 동국대 교육대학원(석사)을 나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언론의 추적 결과 예산여고 졸업이 최종 학력인 것으로 밝혀졌다. '행복전도사'로 불릴 정도로 맑고 건강한 웃음을 선사하던 정 교수였기에 거짓 학력의 충격은 크다.
그는 때로는 망가지는 모습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 웃음을 주었으며, 배울 만큼 배우고 잘난 사람의 그런 모습에서 심리적 보상을 받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 스스로는 2004년 MBC '내 인생의 사과나무'에서 "남들처럼 가방 끈이 길지 않다"는 얘기를 하는 등 학력을 속인 일이 없으며, 그 동안 잘못 알려진 학력은 출판사가 윤색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적어도 신 전 교수의 적극적 거짓말과는 다르다는 항변이다. 그의 항변을 그대로 받아 들이더라도 윤리적 책임은 줄지 않는다. 마땅히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의 '부작위'는 '작위'와 같은 법적 평가를 받는다.
마찬가지로 사실과 다르게 씌어진 학력, 그리고 그런 자료에 근거해 잘못 형성된 일반인의 인식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은 데 따른 윤리적 비난 가능성은 적극적 거짓말과 다를 바 없다. 자신의 홈페이지에까지 실린 거짓 경력을 가만히 놔 두었다면 스스로도 거짓을 즐긴 셈이다.
그가 신 전 교수만큼 절실하게 거짓말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점은 인정된다. 전업주부이던 정 교수는 황수관씨의 '신바람 건강법'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유명세를 탔고, 어지간한 연예인 못잖은 인기를 얻었다.
그런 경력만으로도 심각하지 않은 과목이라면 얼마든지 대학 강의를 맡을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사람도 많다. 따라서 처음 거짓 학력이 우연히 만들어졌을 때 곧바로 고쳐 잡았다면 거짓말을 키우지 않을 수 있었다.
거듭되는 거짓 학력 소동은 학력사회에서 실력사회로 넘어가는 우리사회의 과도기적 자화상이다. 제2의 빌 게이츠를 꿈꾸며 멀쩡한 대학을 그만두고 일찌감치 창업 일선에 뛰어드는 청년들도 있지만, 출신 대학을 잣대로 삼아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려는 행태도 아직 뿌리깊다. '학력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사회'에 대한 동경이 식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학력과 실력은 결코 둘이 아니다. 학력은 학창시절 요구된 실력인 학력(學力), 즉 공부하는 힘의 성과물이다. 문제는 과거 한때의 실력에 불과한 학력을 출신대학 기준의 학력(學歷)으로 고정해서 보는 자세다.
실력이 고정된 게 아니라 자신을 갈고 닦는 노력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한 친구가 똑똑히 보여주었다. 추첨으로 입학한 고등학교에서 그는 늘 성적이 위보다 아래로 가까웠다.
공부와 거의 담을 쌓은 대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하고, 운동을 즐기고, 약간의 불량기도 있었다. 서울 변두리 대학에 턱걸이하듯 들어갔다가 졸업 후 꽤 괜찮은 회사에 취직을 했다.
제대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는지가 걱정될 정도였지만 20여 년 간 아무 탈없이 근무했고, 조기퇴직 바람이 거센 가운데 임원으로 승진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는 쑥스러워 하며 '비결'을 털어놓았다.
● 부단한 노력이 중요하다
"입사 이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늦어도 아침 6시30분이면 출근을 했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명문대 출신 동료들을 당해낼 수가 있어야지. 매일 아침 두 시간씩 업무 관련 사항을 공부하고 꼼꼼히 챙기고서야 경쟁할 수 있더라고. 그것이 버릇이 됐어. 지금도 아무리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새벽같이 출근해."
그랬구나. 뒤늦게 아주 제대로 철이 들었구나. 못 보던 사이에 혼자서 뼈를 깎는 노력을 했구나. 그 정도의 결심과 노력이라면 얼마나 탄탄한 실력이 몸에 붙었겠냐. 친구야, 옛날 실력보다 훨씬 빛나는 지금의 '학력'에 자부심을 가져!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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