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우리가 처음 만날 뻔한 게 내가 감옥에 있던 1998년이었지?”
“예. 제가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작가 100여명과 선생님을 면회하러 갔는데 교도소 측 허가가 안 났어요. 항의의 뜻으로 3만원 분량의 500원짜리 동전을 각자 들고 영치금을 맡기는 긴 줄을 만들었죠.”
“맞아. 당시 영치금 한도가 3만원이었으니까. 그때 교도소 행정이 거의 마비됐었지. 괘씸죄로 1주일 동안 운동금지 처분을 받았지 뭐야.”
절친한 문단 선후배인 소설가 황석영(64)씨와 은희경(48)씨가 13일 모처럼 자리를 같이 했다.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한 음식점. 두 사람은 인터넷서점 ‘예스24’와 한국관광공사의 공동 주최로, 한국 문학의 현장이 된 남도 지역을 둘러보는 ‘2007 예스24 문학캠프’(12~14일)에 나란히 초청받았다.
예스24가 지난달 네티즌 5만8,6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투표에서 황씨는 ‘노벨상 후보로 추천할 한국 대표 작가’ 부문, 은씨는 ‘한국을 대표할 차세대 작가’ 부문에서 각각 1위를 차지했다.
황씨는 “96년에 나온 은씨의 소설 <새의 선물> 을 읽었는데 냉소적인 문장 밑으로 흐르는 따뜻한 기운을 감지했다”며 “그래서 ‘손이 차가운 사람이 마음은 따뜻하다고 합니다’란 속담을 적은 엽서를 격려차 보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은씨는 늘 변화하는 작가”라며 “특히 <상속> <비밀과 거짓말> 은 작가 내면에 큰 변화의 획을 긋는 좋은 작품”이라고 덕담했다. 비밀과> 상속> 새의>
은씨는 “사석에서는 스스럼없이 농담을 건네는데 문학 얘기를 할라치면 대학 1학년 때 선생님의 작품을 읽고 전율을 느끼던 기억이 떠올라서 말문이 막힌다”며 “지금까지 이룬 성취에 만족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찾고, 당대에 대해 발언하는 모습이 존경스럽다”고 답했다. 은씨는 “건조하고 힘있는 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황선생님의 작품을 읽고 거기서 얻은 상상력에 기대기도 한다”고 말했다.
황석영씨는 “한국 문학의 위기를 말하는데 오히려 중흥기라고 보는 게 옳다”고 단언했다. 1년 내내 원로, 중견, 신진 작가를 가릴 것 없이 고른 수준의 작품이 꾸준히 나오면서 어떤 나라에서도 유례가 없는 활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는 “오히려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프랑스, 일본 작가의 작품 중엔 현지에서 문학적 대접을 못 받는 수준 미달의 것이 적지 않다”며 “대중문학과 구별해서 국내외의 본격문학을 독자에게 적극 소개하는 문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조만간 문단 관계자들과 한국문학의 지속적 중흥책을 논의하기 위한 행사를 마련 중이라고 덧붙였다.
황씨는 “노벨문학상 후보 감으로 꼽아주니 고맙지만 작가들이 이 상에 너무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창피할 때가 있다”고 일갈했다. 70년대 이후 창작을 거의 하지 않은 해롤드 핀터가 수상한 경우나, 수상자 선정에서 문학적 가치보다 정치적 계산을 앞세우는 등 상의 권위에 의심갈 때가 많다는 게 이유다.
최근 출간한 장편 <바리데기> 에서 문화의 이동과 조화를 강조한 황씨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한국인 인질 사건에 대해 “무고한 사람을 억류하는 일은 인간성에 대한 명백한 범죄”라면서도 “선교가 됐든 자원봉사가 됐든 피랍자들의 행동이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나 동질감에서 비롯한 것은 아닌 것 같아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리데기>
4년 가까운 유럽 생활을 접고 10월말 영구 귀국할 예정인 황씨는 “문학관을 지어주겠다는 등 4, 5개 군에서 자기 지역으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면서 “후배 문인들과 적절한 장소를 상의해 문화공동체를 꾸리려고 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는 은씨와의 만남 후 캠프에 참가한 독자 200여명과 함께 1976~86년 10년 동안 한국일보에 연재한 대하소설 <장길산> 의 배경인 전남 화순 운주사를 찾았다. 이어 밤 8시30분부터는 광주의 한 호텔에서 독자들을 상대로 문학강연과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전날인 12일에는 은씨가 전남 나주의 한 호텔에서 독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장길산>
순천=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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