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慶應)대 법학부 학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8월 정상회담으로 9월 열리는 6자 회담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코노기 학장은 김 위원장이 이 시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선택한 것은 “6자 회담의 흐름을 가속시키자는 뜻을 담은 것”이라며 “성과를 올리기 위해 이미 결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_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임기가 6개월 남은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연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회담에서 약속한 것과는 달리 한국측이 다시 평양을 방문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또 정상회담을 대통령 선거에 이용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등등 여러 의문이 생겼다.
그렇더라도 이번 회담은 9월 6자 회담의 직전에 열린다는 점에서 국제 안보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한다. 그 의문과 시비와는 별도로 이번 정상회담이 6자 회담의 진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과도 성격이 다르다.
북미가 주도한 6자 회담의 2ㆍ13 합의가 있었고, 북한이 초기단계 조치를 시작한 시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마련됐다.
국제 정세가 먼저 변하고, 그것을 가속화하는 형태로 정상회담이 열린다. 9월 6자회담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 DJ의 1차 남북정상회담보다는 1972년 7ㆍ4 남북공동성명 때와 상황이 닮았다.”
_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 시점에서 정상회담을 선택한 노림수는 뭐라고 보는가.
“한국은 이미 정상회담을 제의했었다. 이 시점을 택한 것은 김 위원장이고, 그 의도는 명확하다.
즉 6자 회담의 흐름을 가속시키자는 것이다. 9월 6자 회담은 정말로 중요하다. 전체 흐름으로 보면 북한 핵을 불능화하는 문제에 대한 움직임이 생기느냐 마느냐를 알 수 있는 회담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도 중요하다. 이 흐름에 맞춰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측이 숙고를 거듭한 후 선택한 정상회담이기 때문에 뭔가 성과를 올리려고 할 것이다. 회담 장소에서 끌고 당기며 성패를 가리려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이미 결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회담이 잘못되면 결국 남북관계가 뒷걸음질하고, 6자 회담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측은 정상회담을 통일문제와 관련해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지난번 정상회담에 이어 연방제나 국가연합 등을 포함하는 새로운 남북관계를 요구하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
_이번 회담에서 예상할 수 있는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가.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은 당연히 북한 핵 불능화 문제를 두고 북한에 이행기간을 포함해 일련의 핵심사안에서 명확한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그것을 얻는다면 북미 합의와 남북 합의가 일치하므로 향후 한반도 정세에 급속한 진전이 이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남북한이 북한 핵 불능화 조치에 합의를 이루고 그 합의가 6자 회담에서 지지를 받으면 그대로 움직이게 된다. 당연히 북미 국교정상화, 북일 수교, 에너지지원 등 다른 워킹그룹의 과제도 일제히 탄력을 받을 것이다.
나아가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4개국 직접 당사자가 한국전쟁의 종결과 평화체제 구축 등을 논의하는 포럼이 가시화하는 등 구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핵심은 북한이 어느 선까지 핵 불능화 조치를 취할 것인가이다. 지금은 북한 핵의 전면적인 폐기를 논의하는 단계가 아니라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조지 W 부시 미 정부의 새로운 정책은 북한 핵 불능화를 중시하면서 빌 클린턴 정부가 거뒀던 성과 이상을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북한이 이미 50㎏의 플루토늄을 갖고 있다고 판단된다. 미국은 북한의 플루토늄 양이 점점 많아져 해외로 이전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 핵의 해외 이전을 막을 수 있다면 당분간 50㎏의 플루토늄은 묵인할 것이다.”
_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주기만 할 뿐 받을 것은 별로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회담이 남북 사이에 새로운 민족 공동체를 건설하는 쪽으로 흐른다면 그런 논란이 생길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관계를 상정하는 북한은 개성 공업단지 같은 프로젝트 등 더 큰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회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남북한의 공존과 핵무기의 최종적인 폐기 등 매우 추상적이다.
그러나 나는 그 형태라도 비핵화가 진전하고, 남북의 경제교류가 확대한다면 비교적 이른 丙瓦【?북한의 경제체제가 변화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북한의 핵 문제는 사실은 북한의 체제 변혁의 문제이다. 그런 프로세스로 북한의 경제체제를 자본주의화한다면 핵 문제의 최종 해결과 남북의 공존과 통일 등에도 연결된다.”
_미국과 일본은 정상회담을 표면적으로는 환영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불안해 하는데.
“미국과 일본은 좀 다르다. 미국은 북한의 핵 불능화가 진전하면 어느 정도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할 것이다. 부시 정부의 정책이 북한의 핵 실험 이후 크게 변했다.
북한과 직접 만나 대화했고 단계적인 해결을 인정하는 등 태도가 달라졌다. 미국은 아마 6자 회담 진전 이상으로 남북관계가 전진하는 것을 불안해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미국이 결과적으로 회담의 성과를, 남북관계의 진전을 따를 것이라고 본다. 그 진전이 핵 불능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한국이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_일본 정부의 입장은 어떤가
“일본은 북한이 갖고 있는 50㎏의 플루토늄 자체가 불안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해외 이전의 문제가 아니다. 그 측면에서 미국과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가 있다.
아시다시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했지만 납치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어 지금과 같은 남북관계나 6자 회담의 급속한 진전은 바라지 않는다. 다만 정세가 그런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반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일본은 대북 정책을 수정해야 하는 시기가 왔지만 아베 정부에서는 커다란 수정은 없을 것이다.”
_이번 회담에서 일본 정부가 가장 주목하는 점은 무엇인가.
“북한 핵의 핵 불능화 진전 여부이다. 만일 진전하는 방향으로 가면 미국은 당연히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하는 결정을 할 것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즐겁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아베 정권은 대북 정책을 크게 바꾸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최근 북한과의 관계가 이대로는 안된다는 상황 인식이 퍼지고 있다.”
_정상회담에 임하는 노 대통령에게 조언한다면.
“될 수 있으면 정상회담을 대통령 선거와 연결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회담이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지 명확하지 않다. 정상회담 전 반드시 야당 지도자들과 충분하게 협의할 필요가 있다.
초당파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통령 임기가 6개월이 안 남아 그 후의 일을 약속하는 것은 원래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 후보들과 잘 상의해 이해를 얻은 뒤 해야 한다..”
_일본 정부에 바란다면
“지금과 같은 대북 정책은 빨리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도 정책을 바꿔 미국의 새로운 정책 방향과 남북의 정세에 적응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과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그랬듯이 북한과는 수면 하에서 조용하지만 대담한 외교를 펼쳐야 한다. 납치문제 해결뿐 아니라 핵 문제, 과거 문제 청산 문제 일괄교섭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
●오코노기 교수는? 고이즈미 정권때 브레인 활동… 北서도 신뢰
2005년게이오(慶應)대법학부 학장에 취임한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교수는 일본의 대표적인 한반도 문제 및 동아시아 국제정치 분야 전문가이다.
일본에서 한반도 문제를 학문으로 처음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그는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중시하는 온건·보수적 입장으로 신망을 얻고 있다. 2000년대 초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정권 때 전략적 외교자문 기관이었던‘대외관계 태스크포스’에서 브레인으로 활동했다.
재임 중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문제에 너무 집착한 고이즈미 총리에게 개인적으로 아쉬움을 갖고 있다. 6자회담이 난항을 겪었던 2004년 4월 북한 대외문화연락회의 초청으로 방북하는 등북한 측으로부터도 신뢰를 얻고 있다.
1945년군마(群馬)현출생인 그는 게이오 대법학부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거쳐게이오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게이오대 조교수 등을 거쳐 현직에 이르렀다.
인터뷰=김철훈 도쿄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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