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풍경을 주로 그리는 내가 자연을 그린 모네의 그림이 좋아지는 건 확실히 나이 들어가는 탓이다. 아니 그 옛날 화집 속에서 보았던 그림 ‘수련’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면서 왠지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해주는 그림이 모네의 그림이라는 생각을 오래 전에 했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그 동안의 외국 여행 길에서 수없이 보았던 모네의 그림들을 별 기대 없이 시립미술관에서 보았을 때 나는 생각 밖의 즐거움을 선물로 받았다.
특히 백내장으로 시력이 약해진 모네가 그린 말년의 수련 그림들은 화가인 내게 귀가 들리지않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는 것과는 다른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 농도 짙은 노란색과 붉은색과 초록색의 거친 붓터치에서 소진해가는 생명의 마지막 불길 같은 것이 느껴져서였을까?
마치 고추잠자리가 가득 날고있는 늦은 오후의 가을날 같은 풍경들 속에서 나는 문득 나의 노년을 떠올렸다. 젊은 날의 가난과 고독을 딛고 일어나 오래 살아낸 화가는 행복하다.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원도 한도 없이 모두 다 그리고 나서 세상을 떠나는 화가의 발자욱은 얼마나 가벼울까? 모네가 그랬다.
생의 한 가운데인 마흔 세 살에 파리 근교의 지베르니에 자신만의 정원을 만들고, 그로부터 사십 년 동안 정원의 식물들과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수련 그림들을 그리다 세상을 떠난 모네의 그림 인생은 화가를 업으로 둔 우리 모두의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정원에 서식하는 식물들과 연못의 수련에 비치는 빛과 그림자를 통해 모네는 다시는 돌아오지않을 덧없는 순간의 감흥을 자신만의 고요하고 절대적인 그림 세계로 승화시켰다.
86년의 생애동안 오직 그림만을 생각하며 그림만을 그리다 간 모네의 그림 속에는 해와 구름과 물과 식물들이 어우러져 실재의 정원을 넘어선 우리들 마음 속의 정원이 숨어있다.
모네의 그림 속 연꽃들은 보는 이의 마음 속 연못에 심겨져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는다. 우주의 형상은 모네에게는 자신의 작은 정원과 연못 속에 있었다.
세상을 다 돌아보아도 결국은 내 마음 속에 존재할 우주를 품은 정원을 꿈꾸어본다.
뉴욕 현대 미술관에 걸려있는 모네의 거대한 수련 그림은 유학 시절 혼자인 내게 늘 말을 걸어왔다. 우리네 인생도 그와 같아서 모네의 수련 그림을 바라보며 우리들 삶의 빛과 그림자와 그 편린들을 되돌아볼 수도 있으리라.
모네의 그림들을 감상하는 일은 스무 살의 당신에게는 설렘으로, 마흔 살의 당신에게는 잊혀지지 않을 향수의 한 조각으로, 칠십 살의 당신에게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삶의 순간들의 아름다움과 쓸쓸함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소중한 순간들이 되지 않을까?
황주리(화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