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도 시로스케 지음ㆍ이인숙 옮김 / 이마고 발행ㆍ367쪽ㆍ1만3,000원
로열패밀리들의 삶은 시대를 막론하고 대중들의 호기심을 끄는 소재다.
비록 망국의 왕실일지언정 ‘대한제국’ 사람들에 대한 대중들의 궁금증도 마찬가지였나보다. 1907년부터 1920년까지 조선왕실을 관리하는 일제의 행정기구인 이왕직(李王職)의 하급관료로 일했던 곤도 시로스케(權藤四郞介).
조선의 마지막 군주인 순종을 창덕궁에서 만 13년간 ‘보좌’(사실상의 감시)했던 그는 서울에서 1926년 9월 이왕가(李王家) 사람들의 면모를 담은 <이왕궁비사(李王宮秘史)> 를 펴냈다. 이왕궁비사(李王宮秘史)>
나라가 망한 지 10여년이 흘렀지만 ‘만백성의 어버이’ 였던 왕과 왕족들이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반영하듯 이 책은 당시 신문에 비중있게 소개됐다.
이 책을 번역한 <대한제국 황실비사> 는 당시 왕가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건강상태는 어땠는지, 이들의 행차에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가 내밀하게 기록돼있다. 대한제국>
일본 천황을 알현하기 위해 도쿄에 간 순종에게 천황이 왜 부드러운 육류만 대접했는지, 창경원 개원식을 할 때 순종이 서양식 모닝코트를 입어야하는지 전통 복식을 차려야하는지를 둘러싼 논란 등 시시콜콜한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책의 장점 또 한가지는 관찰자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비교적 핵심정보에 접근했다는 점. 왕실을 농락하던 친일권력자인 이완용과 윤덕용의 파워게임, 왕실이 총독부와 친근해 보이도록 함으로써 민중들을 순치시키려 했던 식민지 권력자들의 음험한 계략 등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그들이 어떻게 살았나’ 에 관심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치욕을 견디며)살아냈나’ 하는 비애감이 몰려온다. 기록자는 ‘일본과 조선의 합병은 조선의 축복’ 이라고 믿었던 철저한 제국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는 ‘순종은 대세에 순응할 줄 아는 매우 총명한 분’ 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에 대해 ‘이름도 없는 일개 조선청년의 권총에 맞아 영웅적인 위대한 죽음을 맞았다’고 쓰고 있다.
일본에 아들을 볼모로 빼앗긴 순종, 강제로 권력에서 물러나 종이호랑이 같은 만년을 보내야 했던 고종,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강제로 결혼한 뒤 이혼하고 딸의 자살까지 목도해야 했던 덕혜옹주 등 마치 창경원의 우리에 갇혀있는 호랑이 눈빛처럼 마지막 왕실가족들의 슬픔이 크게 울린다.
다만 책 중간중간에 감수자가 마련한 ‘역사바로잡기’ 코너는 당시 황실에서 발생한 사건들, 그들의 행위가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이뤄졌는지를 객관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저자의 편향된 시각을 교정해준다.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린 순종의 초상화. 이마고 제공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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