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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정상회담 '숨은 주역'이라니

입력
2007.08.1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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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한다. 중요하고 의미 깊은 일이다. 의제도 못 정하고, 내용도 희미한데 만나서 뭘 하느냐고 폄하하는 짓은 현 정권에 대한 시샘으로 보인다. 의제나 내용이 있건 없건 남북 정상의 만남은 부시 미국 대통령이나 아베 일본 총리와의 회담보다 더 소중하다.

그러나 그런 걸 말하자는 게 아니다. 밥상이 차려지자 젓가락 숟가락을 들고 달려드는 정치인들의 행태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칭 '남북 정상회담의 숨은 주역들'이다. 참여정부의 물을 많이 먹었다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빨랐다.

정상회담 발표 직후 그의 홈페이지에는 '남북정상회담 관련 이 전 총리 말씀'이 걸렸다. 골프 파문으로 옷을 벗은 뒤 언론이라면 진절머리를 치던 그가 '정상회담 성사까지 활동 일지'도 장만해 기자들에게 돌렸다.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회 회의에 참석, 이번 일은 6월의 제주평화포럼에서 대통령에게 건의한 자신의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총리로서 추진한 일이 결실을 본 것이며, 그 '근거'로 "개성공단과 같은 곳이 남포 원산 신의주 나진 등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계획(?)도 공개했다.

● 숟가락 들고 달려드는 정치인들

통일부 장관으로서 김정일 위원장을 직접 만났던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측은 '증거'를 제시하며 진정한 주역임을 강조했다. 캠프 대변인은 "이번 정상회담은 2005년 6월 정 전 의장과 김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며 그때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던 기억을 상기시켰다.

정 전 의장이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방북했을 때 정상회담 개최를 약속 받았다는 비화(?)까지 곁들였다. 전직 총리보다는 현직 장관이 진정한 특사라는 외교적 수사도 잊지 않았다.

참여정부의 속내를 좀 안다는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까지 '숨은 주역'을 자청하고 나서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그는 "3개월 전 방북, 내가 황해도에 경제공동체를 건설하자고 제안했을 때 북측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면서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촉구했던 게 초석이 됐다"고 공치사를 했다.

굳이 민주당의 논평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들이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이 끝나고 정권이 바뀌자 특검의 칼을 들이대는 데 동조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다 안다.

어디 이해찬씨, 정동영씨, 김혁규씨 뿐이겠는가. 기자들이 정치인의 말을 죄다 옮기지 못해 그렇지, 지면만 주어졌다면 빠짐없이'숨은 주역'으로 8ㆍ28 정상회담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씨를 뿌리고 초석을 놓은 '진정한 특사'였다고 나섰을 것이다.

지난 6월 호국보훈의 달, 한 초등학교 교사가 미술시간에 한반도 포스터 그리기 수업을 했다. 5학년 담임인 그는 아이들 그림 속에서 '무찌르자 공산당'은 거의 없었고, 화해 공존 통일이라는 표현이 많은 것에 감명을 받았다 했다. 몇몇 아이들은 남북정상회담의 모습을 서투르게나마 형상화하기도 했다.

전 총리로서, 전 통일부장관으로서, 현 국회의원으로서 지당한 구상을 놓고 스스로 정상회담의 '숨은 주역'이라고 여긴다면, 그들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을 '희대의 예언자'로 불러 줄 것인가.

● 국민들 관심은 감흥보다는 실체

남북 정상회담을 사적으로 활용하고, 회담 자체를 연말 대통령 선거에 써 먹으려는 자들이 누구인지는 자명하다. 아프간 한국인 인질사건이 계속되는데도 보름 이상 쥐 죽은 듯 있다가 여론에 떠밀려 미국을 설득하러 간다고 공항에서 설쳐대더니, 가서는 망신만 당하고 귀국한 그들, 정치인들이다.

이번 회담은 시기적ㆍ상황적으로 참여정부의 불순한 저의를 짐작할 대목이 없지도 않다. 하지만 그것이 남북정상회담의 소중함을 뭉갤 순 없다. 2000년 제1차 회담 당시 '아, 통일이 오는가' 하고 설레던 국민들은 이번엔 차분하게 회담의 실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국민들을 상대해야 할 정치인들이, 더구나 대권을 꿈꾼다는 사람들이 회담도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 '숨은 주역'이라고 설치고 나서는 꼴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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