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 행정보다 말썽 없는 행정을 중시한 탓일까.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민원인들의 반발을 의식, 마땅히 거둬야 할 건강보험료와 과징금 등 총 1,200억여원을 징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따르면 2006년 복지부 세입ㆍ세출활동 결산 결과, 1,168억원의 지역 건강보험료와 75억원의 과징금을 제대로 거둬들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11월 행정자치부는 복지부에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따라 현실화한 신규 재산세 과세자료를 통보했다. 복지부는 즉시 새 재산세 기준에 따라 건강보험 지역 가입자로부터 2006년 보험료를 징수해야 했지만 보험료 증가에 따른 민원 발생을 우려해 8개월이 지난 2006년 7월에야 새 기준을 적용했다.
복지위는 “복지부의 재산세 과세자료 적용 지연으로 1,168억원의 재정 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복지위 관계자는 “재산세 과표 조정으로 급작스럽게 보험료 증가가 예상되는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8개월이나 새 기준의 적용을 미룬 것은 법이 정한 재량권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법을 지키지 않은 기관에 대해 부과한 과징금 징수도 소홀히 해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복지부는 2006년 관련법을 지키지 않은 병원과 약국에 총 15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해 행정심판 등을 제기한 병원과 약국에 대해서는 ‘패소 가능성’을 이유로 징수를 보류, 154억원 가운데 실제 걷힌 과징금은 78억원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복지위는 “정부의 행정 행위는 일부 하자가 있어도 법원 판결로 취소되기 전에는 유효한 것인데, 행정쟁송을 이유로 과징금 징수 자체를 보류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복지위 관계자는 “복지부는 지난해 9건의 과징금 분쟁에서 8건이나 승소했다”며 “사정이 이런데도, 소송을 제기한다고 무조건 징수를 보류하는 것은 공권력에 순응하는 것보다 반발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잘못된 여론을 확산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책 실패에 따른 손실을 빈곤층 예산 등에서 충당한 것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복지부는 ‘의약품 유통 종합정보시스템’ 구축을 삼성SDS에 의뢰했다가 지난해 정책 변경으로 시스템 구축이 무산되자 458억원을 삼성SDS에 물어주게 됐다.
복지위 관계자는 “복지부는 연차적인 배상에 합의, 지난해 60억원을 삼성SDS에 지불했는데 이 돈을 조달하기 위해 노인요양보장 사업(19억5,000만원)과 장애인 생활시설 확충(4억9,200만원)에 배정됐던 예산이 삭감됐다”고 지적했다. 복지부의 잘못을 배상하기 위해, 취약 계층이 고통을 분담한 셈이다.
행정 부처의 한 관계자는 “이해관계자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각종 정책을 집행해야 하는 고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복지부는 다른 부처에 비해 장기 비전을 갖고 개혁을 추구하기 보다는 눈 앞에 예상되는 민원인의 반발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크다”고 아쉬워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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