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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명저 50] <31>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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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명저 50] <31>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입력
2007.08.0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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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1962년 스물 아홉 살 이어령이 남의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고 피를 토하듯 쓴 글이다. 이 땅에 산업사회의 싹이 트는 당시를 살았던 작가의 순결한 지적 모험이 녹아 있는 글이다. 1960년대 당시 빗발치는 시사론을 제치고 순수문화론적 접근으로 한국을 바라본 글이다.

그래서 언뜻 봐서는 한국문화 비판론인지 예찬론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눈치만 빠르면 절간에서도 새우젓을 얻어먹을 수 있다’ ‘잘 울어야 효자였고 잘 울어야 충신이며 열녀였다’라는 등의 대목에서는 냉소적 시각에서 한국을 욕하는 것으로 들린다.

반면 ‘춘향의 미(美)와 불경이부(不更二夫)라는 춘향의 정절은 분리될 수 없는 것’ ‘공간을 정복하는 미가 서구의 형태미라고 한다면 공간 속에 스스로 동화하려는 순응의 미가 한국적인 형태미’라는 데서는 한국에 대한 예찬론으로 들린다.

하지만 결론은 단순하다. 그 시대를 살았던 한국인의 마음속에 녹아 있는 보편타당한 정서를 글로 표현한 것이 이 책이다. 비판론, 예찬론으로 재단하려는 읽는 이의 시각이 무색하다. ‘이념’ ‘흑백논리’라는 색안경을 벗고 보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가 밝게 보인다.

책은 본디 한국의 풍토를 말하고 있음을 제목에서부터 보여준다. 풍토를 뒤집어 토풍으로, 이를 다시 우리말로 바꾼 ‘흙 속에 바람 속에’로, 잡을 수 없는 바람을 손가락으로 ‘저’ 하며 가리키니 풍토는 머릿속 관념의 세계를 벗어나 딱딱한 물건인 양 손에 잡힌다.

순결한 지적 모험을 토대로 피를 토하듯 저자가 이데올로기에 기대지 않고 쓴 글이라 스스로 “다시 쓰라고 해도 못 쓴다”고 토로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다만 ‘황토’를 ‘황토 흙’으로, ‘지프’를 ‘지프차’로 바꿔 어법에는 맞지 않지만 진솔한 언어로 바꾸는 ‘개칠’과 스물 아홉 살 이어령의 글에 2002년 예순 아홉 살 이어령이 댓글을 단 ‘그 후 40년’이 붙었을 뿐이다.

미군용 카키색 지프차를 타고 산하를 누비며 써내려 간 것이 과거라면 정자에 앉아 21세기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현재다. 그가 말하는 정자는 복고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기 구조주의자나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의 그 시점과 엇비슷하다.

정자 공간의 시점이란 이중성, 복합성, 쌍방향성같이 상호간 교환 가능한 겹 시각을 나타내는 시점이다. 무욕망과 비소유의 공간, 사방으로 열려진 정자에 앉아 문화를 완상하는 순수한 시각 공간이다.

40년 세월을 넘어 무엇이 바뀌었는가. 권위주의 형식주의 보수주의 등의 대표격인 ‘갓’이 한국인의 이념이 물질 그 자체로 응집되어 있는 머리의 언어로, 게으름 비행동성의 상징인 ‘장죽(담뱃대)’이 노인 지향적 문화의 산물로 재해석된 것이 그렇다.

과거 지적했던 ‘눈물 문화’에 대한 비판이 굶주림과 고통에 맞서 무기력하게 눈물만 흘리고 앉아 있는 패배주의와 그 소극성에 대한 부정이었다면, 21세기 붉은 악마의 눈물은 감동의 눈물, 함께 기쁨을 나누는 그 공감대에서 흐르는 참여의 눈물이다. 비가 와야 하늘에 무지개가 생기듯이 눈물을 흘려야만 마음에 아름다운 인생의 무지개가 생긴다는 문화의 눈물이다.

통렬히 비난하던 한국의 엉거주춤 문화가 오히려 새로운 디지털 문명의 패러다임에 적응하는 문화모델이라는 대목도 이와 같다. ‘이’ 아니면 ‘저’의 선택에서 중간항을 허락하지 않은 배제의 논리가 소위 콤플렉시티(complexity)라고 하는 복잡과학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도대체 40년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큰 시점의 변화가 있었던 것인가. 비단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시대 변화만 녹아 있는 것은 아니다. 저항의 문학을 쓰던 저자가 전통과 역사를 부정하는 입장에서 모조리 불태우는 화전민의 마음으로 쓴 글이 전편이라면 4ㆍ19를 겪은 후 모든 것과의 인연을 끊은 결과물이 후편에 해당한다.

4ㆍ19 전까지 침묵하던 문인들이 때를 만났다는 듯이 참여문학으로 돌아선 것에, ‘저항의 언어’가 ‘폭력의 언어’로 타락한 것에 염증을 느껴 사회와의 접점이 가장 적은 분야에서 언어를 벽돌 삼아 혼자만의 성을 짓고 들어앉아 쓴 것이 지금 시점의 <흙 속에 저 바람> 이다.

많은 것이 변해 13편의 문답으로 40년 세월을 이었지만 저자는 비단 감투싸움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감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감투싸움’을 벌이고 있는 오늘날의 그 정쟁은, 기실 모자를 사랑하던 민족의 유습(遺習)”이라는 40년 전 견해에 대해 스스로 되묻지 않은 까닭은 과거의 감투 싸움과 현재의 모습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저자의 판단이리라.

2007년 대선을 바라보며 저자는 말한다. “정치판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 대립해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곳이죠. 다만 모든 국민이 평등한 선거 마당에서만이라도 유머와 위트를 느낄 수 있다면, 헐뜯고 상처 내는 싸움이 아니라면 좀 더 즐겁게 정치판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인터뷰 - "창조적인 사람·튀는 생각 포용 못하는 사회 분위기 안타까워"

"노동자와 자본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등 경제적인 관점의 계급은 이제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창조하는 계층과 창조하지 않는 계층으로 나뉠 뿐이죠." 지난해 '디지로그'를 선보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한국이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화사회로 이행하는 데 필요한 핵심동력을 '창조'에서 찾았다. 인터넷과 매체의 발달로 지식정보의 획득만큼은 어느 나라나 거의 동등한 입장이다. 따라서 같은 지식정보를 갖고 창조력을 발휘해 누가 더 그럴듯한 작품을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임은 분명하다.

그는 창조력이 충만한 사회를 만드는 조건을 3T로 집약했다. Talent(재능), Technology(기술), Tolerance(관용)가 그것이다. "우리에게는 가장 부족한 것은 관용입니다. 도대체 창조적인 사람을 그냥 봐주지 못해요. 튄다, 뭔가 이상하다며 비난하기 일쑤죠"라며 성별, 연령, 교육의 간판에 대한 관용, 튀는 생각에 대해 끌어안아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시급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역시 모난 돌이 담을 쌓는 법이다.

1980년대 <축소지향의 일본인> 을 시작으로 지식정보화사회와 창조력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고뇌는 결국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방법론을 깊이 천착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는 급변하는 지식정보사회에 대한 고뇌의 결과물을 디지로그 2편에 오롯이 녹여내겠다는 각오다. 새로운 뉴스를 챙겨 담고, 사실 여부를 검증하는 과정이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디지로그 2편은 "욕심을 내다보니 자꾸 늦어진다"라는 작가의 푸념을 뒤로하고 조만간 빛을 볼 예정이다.

닌텐도의 최신 게임기 위(Wii), SNS(Social Network Service) 등 젊은이에게도 생소한 용어를 줄줄이 꿰고 있는 그는 일흔을 훌쩍 넘겼다. 그 나이에도 자유롭게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불예속' 철학에 기인한다. 어떤 권력, 집단에도 기대지 않는 자유로움이 흥망성쇠의 파고에서 작가의 흔들림을 붙잡아 준 기둥이었다. 그런 불예속이 그를 종교로 이끌었다면 아이러니일까. "이제까지 어디에 예속되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죠. 그게 아직 글을 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만 역사의 언어, 사회문화의 언어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껍질을 벗기고 벗기다가 최후에 인간의 냄새까지 벗겨 내다 보니 영성의 세계가 열리더군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하다는 만해 한용운의 시 <복종> 과 그가 종교로 들어간 모습이 판에 박은 듯 닮았다.

"인간의 욕망을 갖고는 속박을 벗어나지 못한다. 삶을 치열하게 살기 위해 무중력 상태의 영성으로 가는 것"이라는 그의 설명이 이후 작품 속에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자못 기대된다.

이어령

▲약력

1934년 충남 아산 온양 출생

56년 서울대 문리대 및 동 대학원 졸업

60년 한국일보, 경향신문 등 주요 신문 논설위원

67년 이화여대 문리대 교수

89년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객원교수

90년 초대 문화부 장관

99년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주요 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 <한국과 한국인> <생각에 날개를 달자> <지성의 오솔길> <휴일의 에세이> 등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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