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1908년)를 효시로 한 한국 현대시의 역사가 햇수로 100년을 맞았다. 올해는 회원 1,000여 명의 국내 최대 시인단체인 한국시인협회(이하 시협)가 창립된 지 50주년이기도 하다. 해에게서>
시협은 이번 주말부터 뜻 깊은 해를 기념하는 다양한 문학 행사를 개최한다(별도 기사 참조). 작년 3월부터 2년 임기의 회장을 맡아 행사 준비에 분주한 오세영(65) 시인을 만났다.
국내 순수시단의 중견이자 이달 정년을 맞는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인 시인은 월간 <문학사상> 이달 호에 “한국 문단을 양분한 ‘문학과 지성’ 파와 ‘창작과 비평’ 파 사이에서 나는 철저하게 외면 당해 왔다”는 요지의 회고록을 실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학사상>
-유치환, 조지훈, 박목월 등의 주도로 창립된 시협이 50돌을 맞았다.
“자유당 시절 대표적 문화단체인 문총(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의 약칭)이 어용 단체 노릇을 하는데 반발해 시협이 창립됐다. 독재에 맞서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겠다는 취지였다. 신석초, 서정주, 김춘수, 조병화, 정한모, 김남조 등이 회장을 맡으며 한국 시단의 정통을 계승해왔다고 자부한다.”
-11~13일 동아시아 시인 포럼 주제가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 동아시아 시의 역할’이다.
“세계화와 민족주의가 상충하는 시대다. 세계화의 실상은 미국화로, 서구적 가치와 표준이 일방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 고유의 문화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 세계화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동양적 가치관이 세계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찾자는 취지다.”
-한국 현대시를 연구하며 19권의 학술서를 냈다. 시사(詩史) 100년을 평가한다면.
“한국 현대시 100년은 한마디로 정치사였다. 문학이 정치 권력에 기대고 시류를 쫓았다. 1920, 30년대는 프롤레타리아 문학만 존재했고, 해방 이후에도 참여, 민중이란 구획을 벗어난 시는 살아남기 힘들었다. 순수시조차도 독재와 반공 이데올로기란 정치적 상황을 의식한 것이었다. 문학다운 문학, 문학으로서의 문학이란 의식을 가져보지 못했다는 점은 시단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문제다.”
-현실참여적 시풍은 시대적 요청 아니었을까.
“맞다. 나는 문학 지상주의자가 아니다. 80년대만 해도 민주화를 향한 열망에 문학이 복무한 것은 정치적으로 옳은 일이었다. 다만 정치적으로 훌륭한 시가 문학적으로도 그렇다고 주장하지 말라는 것이다. 시의 언어는 소설과 달리 전달적 기능이 아니라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젊은 시인들의 탈정치성은 어떻게 보나.
“크게 두 가지 경향성을 보인다. 영상 문화에 익숙한 세대답게 환상, 해체 등을 표방하는 감각적 작품과 천진난만한 감성을 앞세우는 서정적 작품.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이 없어서 자유롭지만, 시 세계를 지탱해줄 철학이 부족해 보인다. 문태준, 김경주 등은 깊은 사유가 서정성을 뒷받침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문학사상> 에 기고한 글이 화제가 됐는데. 문학사상>
“많은 공헌에도 불구하고 창비와 문지가 자기 경향이나 계열에 참여하지 않는 작가들을 고립시켜왔다는 점은 비판받아야 한다. 등단 작가와 발표작이 크게 늘어난 요즘엔 평론가가 옥석을 가리는 역할을 잘해내야 할텐데, 이들이 특정 문학 권력에 편입돼 신뢰성이 의심스러운 작품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23년 봉직한 대학 강단을 떠나게 됐다.
“다음달 중순에 마지막 강의가 예정돼 있다. 정년에 맞춰 42년 간 써온 시집 17권을 2권으로 묶은 책을 냈다. 창작을 계속할 테니까 ‘전집’은 아니고 ‘집합본’이랄까. 이달 중순엔 동창이나 문단 지인들이 나에 대해 쓴 글을 묶은 문집이 나온다. 서울을 벗어나 꽃, 나무를 기르며 창작에 전념하고 싶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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