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합의가 어제 전격적으로 발표되었다. 2000년에 이어 7년 만의 만남이다. 무엇보다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관계의 제도화에 기여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즉 한 번의 만남이었다면 일회성에 그치지만 이제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도 정상회담을 개최함으로써 회담의 정례화가 촉진될 것이다. 그리고 남북 간 최고위급 대화채널인 정상회담이 정례화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남북관계의 제도적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정치적 필요 때문에 정상회담을 구걸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합의 과정은 오히려 북이 적극적으로 나선 형국이다. 남측이 구걸하다시피 했다면 5월의 장관급 회담에서 쌀 지원을 연기함으로써 북을 자극하거나 장성급 회담에서 우리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설전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남측은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정상회담이 언제라도 가능하다는 일관된 입장이었다.
따라서 2ㆍ13 합의로 북핵문제가 진전되는 상황에서 북이 정상회담을 수용한다면 마다할 리 없는 것이었다. 반면에 북한은 그 동안 여건 미성숙을 내세우다가 최근 들어 정상회담 수용 입장으로 선회한 것인 바, 여기에는 북핵문제와 함께 남북관계를 동시 진전시키면서 한반도 정세에 대한 나름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북핵문제 해결을 통해 체제 안정을 보장 받고 남북관계를 통해 경제적 회생을 노리겠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전략적 구상은 그 전제로 핵 포기와 개혁개방에 대한 결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상회담 합의에 대한 또 하나의 논란은 임기말이라는 시기적 적합성 여부다. 실제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을 실제 이행하는 것은 다음 정부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합의 이행의 실천성 문제가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2000년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당시 임기 말 상황과 대선에 밀려 무산됨으로써 결국은 북미관계의 ‘잃어버린 10년’을 가져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임기 말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한반도 정세에서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문제, 그리고 남북관계에서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 것이라면 당연히 정상회담은 뒤로 미뤄져서는 안 된다.
예상되는 의제가 북핵문제일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김정일 위원장의 육성을 통해 비핵화 의지와 2ㆍ13 합의 이행 의지를 확인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더불어 남과 북 정상이 한반도 평화에 강력한 의지를 합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군사적 대치의 주체이자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인 남북의 양 정상이 불가침과 상호 무력사용 포기 및 군사적 신뢰구축 등에 합의하는 이른바 ‘한반도 평화선언’을 한다면 이는 향후 진행될 평화체제 논의에서 남북의 적극적 역할을 가능케 할 것이다.
아울러 경제협력과 사회문화에 치중된 작금의 남북관계가 정치군사 분야로 확산되기 위해서도 1차 때 비껴갔던 평화문제가 논의되는 것은 당연하다. 정체상태에 놓인 남북관계를 새롭게 추동해내는 신동력(新動力)과 함께 한 단계 질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포괄적 논의도 필요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 발표를 접하면서 두드러지는 특이점은 1차 때와 다른 차분함이다. 회담을 준비하는 정부도 그렇고 이를 대하는 국민들 역시 흥분과 감격보다는 진지함 속에 구체적 성과를 바라는 분위기다. 오히려 소란스러운 곳은 정치권이다. 여권은 정상회담 개최를 적극 환영하는 반면 한나라당에서는 정치적 깜짝쇼라며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상회담을 반대하는 측의 논리를 무조건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제기되는 우려를 최대한 불식하려는 적극적 노력이다. 야당이 불안해 하는 정치적 활용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하고 그 어느 때보다 엄격한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초당적 협조를 얻을 수 있도록 정부는 만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정상회담이 더욱 빛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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