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로이드가 만들어낸 약물 홈런왕인가, 아니면 대기록 신화를 창조한 진정한 영웅인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이처럼 논란을 빚었던 기록이 있었을까. 배리 본즈(43ㆍ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8일(한국시간) 워싱턴 내셔널스전에서 개인 통산 756홈런을 쏘아올리며 마침내 메이저리그 홈런킹에 등극했다. 그러나 본즈의 홈런 신기록을 둘러싼 논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날 구장을 찾은 샌프란시스코 팬들은 본즈의 홈런에 기립박수를 보냈지만 다른 구장에서 756호 소식을 들은 팬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지난 5일 샌디에이고 펫코 파크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무표정한 표정으로 본즈의 755호 홈런을 지켜 본 버드 셀릭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의 모습은 현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AP 통신은 이날 경기 전 ‘셀릭 커미셔너가 본즈의 기록을 따라다니는 대신 주말에 금지약물조사위원회의 조지 미첼 위원장을 만날 것’이라고 전했다. 메이저리그의 최고 수장인 셀릭이 약물 의혹을 받고 있는 본즈의 홈런 기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다.
지난 31년간 메이저리그 홈런왕 권좌를 지켜왔던 행크 에런은 사전에 녹화된 영상을 통해 축하 메시지를 보내긴 했지만 끝내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본즈 자신도 홈런 신기록을 좇으면서 그라운드 밖에서는 끊임없이 개인 변호사인 마이클 레인스와 대배심 재판에 대해 논의해야 했다. 본즈가 6개월 뒤로 연기된 연방대배심에서 스테로이드 복용과 관련한 위증 혐의로 유죄판정을 받는다면 그의 홈런 신기록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본즈에 대한 반정서는 특히 야구 전문가들 사이에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 유수의 스포츠채널인 ESPN이 본즈가 756홈런을 친 직후 전문가 7명에게 의견을 물은 결과 이들은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스테로이드로 만들어진 본즈의 기록에는 위대함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약물 복용 의혹을 떠나 본즈가 분명 평범함을 뛰어 넘는 위대한 타자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무엇보다 그의 기복 없는 플레이와 뛰어난 선구안, 메이저리그 타자 가운데 가장 간결한 스윙을 자랑하는 방망이 솜씨 때문이다.
본즈는 빅리그 사상 최초로 13년(1992~2004년) 연속 30홈런 이상을 쏘아 올렸고 수많은 고의4구 견제 속에서도 2홈런 이상을 때려낸 경기가 71게임이나 된다. 베이브 루스(72경기)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또 13시즌이나 세 자릿수 볼넷을 얻어냈다. 800g대 초반의 ‘초경량 방망이’를 들고 호쾌한 홈런을 쏘아 올리는 데는 불혹의 나이를 넘겨서도 150km대의 빠른 배트 스피드를 자랑하는 천부적인 타격 능력에 있다.
그러나 본즈가 끝내 약물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그는 야구 팬들에게 영원히‘박제된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승택 기자 l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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