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이 정전으로 한때 가동이 중단됐다. 하루 만에 완전히 다시 정상 가동에 들어갔고, 피해액도 400억원 정도에 그쳤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물론 완전 무사고가 최선이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원인을 찾기 위해서라도 전체 전기시스템의 정밀 점검이 이뤄질 터이니, 대형사고를 막는 액땜일 수도 있다.
이번 사고를 두고 첨단 공장에서 어떻게 정전 같은 원시적 사고가 일어나느냐 의문이 무성하다. 그러나 대정전 가운데 원인이 불분명한 것도 많고, 첨단 시스템이 오히려 사고 확산에 기여하기도 했다.
■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정전은 2003년 8월의 ‘뉴욕 대정전’이다. 뉴욕을 포함한 미국 북동부 지역과 인접 캐나다 지역의 5,000만명이 12~24시간의 정전에 시달렸고, 피해액은 60억 달러에 달했다.
공식보고서가 사고의 출발점으로 지목한 것은 가로수다. 크게 웃자란 나뭇가지가 전선 위로 떨어지면서 국지적 정전을 일으켰고, 때마침 송전관리 전산망에 버그가 발생해 국지적 전력손실을 알리지 못해 인접 발전소에 과부하가 걸려 정전되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다. 다른 주장도 다양하게 제기됐지만, 시스템 장애라는 점은 모두 일치했다.
■ 뉴욕 대정전은 두 차례 더 있었다. 1977년 7월의 대정전은 겨우 1시간 10분 만에 거대도시를 완전히 무법천지로 바꾸었다. 강도와 절도, 방화와 폭동이 거리를 휩쓸었다.
리영희씨의 <우상과 이성> 은 이 모습을 탕산(唐山) 대지진 당시 중국인들의 자세와 비교하면서 문화혁명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65년 11월의 뉴욕 대정전은 미확인비행물체(UFO)가 송전선 위에 나타났다는 목격담으로 더 유명할 만큼 뚜렷한 원인이 드러나지 않았다.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북미 지역의 거듭된 대정전이야말로 문명의 아이러니다. 우상과>
■ 정전은 지진과 벼락, 태풍, 수해, 폭설 등 천재(天災)로 일어나기도 하고, 비행기나 크레인, 심지어 새집이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주요 산업시설은 이런 요인에는 대비책을 갖춘다.
반도체 공장처럼 고도의 전기 품질을 요구하는 첨단 산업시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선로 절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전은 결과적 합선에 따른 순간 과부하가 원인이다.
이번 사고도 차단기가 불량품이거나 고장 난 게 아니라면, 과부하를 감지한 차단기의 ‘정상 작동’에 따른 것일 수 있다. 대비책 안에 사고의 씨앗이 도사리고 있다는 역설적 진실이 밝혀질지 궁금해진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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