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영장 없이 도청을 할 수 있도록 미 행정부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해외정보감시법(FISA) 개정안이 미 상원에 이어 4일 하원에서도 찬성 227, 반대 183으로 통과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5일 의회에서 넘어 온 개정 법안에 즉각 서명, 이 법의 효력을 발생시켰다.
FISA 개정으로 미 정부의 정보ㆍ수사 당국은 해외의 테러용의자 추적을 위해 필요할 경우 사전 영장 없이도 미국 내 통신망이나 서버를 이용한 이들의 전화통화나 이메일을 거의 무제한적으로 도청할 수 있다. 개정안은 법무장관이나 국가정보국장(DNI)이 특별 법정의 허가 없이도 도청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영장 없는 도청에 대한 정부 권한은 한층 강화됐다.
이 개정안에 대해 민주당 반대론자들과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등 시민ㆍ인권 단체 등은 “행정부가 자체적으로 도청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해외에서 미국으로 넘나드는 모든 전화와 이메일을 도청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이는 그동안 탈법적으로 영장 없는 도청을 감행해 온 부시 행정부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며 반대해 왔다.
이들은 “개정안이 해외 테러용의자를 타깃으로 한다고 하지만 미국 시민이 외국 거주자와 전화통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주고 받는 경우에도 악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초 다수당인 민주당 하원 지도부는 이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민주당 내 보수파들이 공화당의 찬성표에 가세,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5일 “개정안은 앞으로 6개월 동안만 효력이 있다”면서 “반드시 재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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