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문제는 한중 양국이 국교수립의 여정에서 결코 피해갈수 없는 핵심 쟁점이었다. 다만 언제 협상 테이블에 올려지느냐 하는 타이밍이 문제일 뿐이었다.
중국측 주장 중화인민공화국(PRC)은 전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정부이며 대만은 중국 영토와 분리할 수 없는 일부분이다. 대만은 고대부터 중국의 영토이며 19세기 말 일본에 강점되고 반세기 동안 식민통치를 받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중국에 귀속됐다.
따라서 중국은 그 어떤 형식이라도 ‘2개의 중국’ 또는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을 격렬히 반대하며 중국의 이 같은 입장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세계 절대 다수 국가의 인정을 받고 있다. 중국은 이미 ‘한 나라 두 체제(一國兩制)’ 방식으로 통일을 실현하는 방향을 명확히 설정했다.
일본은 우리와 수교할 때 중일외교관계 회복 3원칙에 합의했다. 즉 일본은 PRC 정부를 중국의 유일합법정부로 인정하고 대만이 PRC의 떼어 놓을 수 없는 일부임을 인정하고 대만과의 조약을 폐기했다.
중국은 한국이 1948년 중화민국(뒤에 대만) 정부와 외교관계를 맺은 사실을 알고 있다. 이는 PRC가 아직 건국하지 않았고 당시 중화민국 정부는 국민당 정부였던 역사적 상황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만큼 한중관계를 가일층 발전시키려면 대만문제를 중국의 원칙적 입장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원래 중화민국 정부와 수교했지만 1990년 PRC와 우호협상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중국 측은 예상대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듭 강조했다. 우리 대표단은 수교 교섭을 앞두고 중국과 수교한 국가들의 대만 문제 처리 방식을 철저히 조사했다.
특히 미국 클레어몬트 맥켄나(Claremont Mckenna) 대학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소장인 이채진 교수에게 의뢰, ‘한중국교 수립과 대만 문제’에 대한 대책을 비롯해 사우디 등 최근 중국과 수교한 국가의 대만 문제 처리 방식을 면밀하게 연구하고 조사했다.
사우디는 대만(당시 중화민국)과 1947년 수교했고 1990년에 중국(PRC)과 수교하기 전까지는 대만 정부가 외교관계를 가진 약 30개 국가 중 한국과 함께 가장 중요한 우방이었다. 나는 중국이 사우디와 수교 당시 역사적 배경에서 갖는 특수성이 얼마나 고려되었는지를 물었다.
장루이지에(張瑞杰) 대사는 사우디가 중국 측의 원칙적 입장을 접수했다고 짧게 대답했다. 중국이 먼저 원칙적 입장을 제시한 그 시점에서 나는 대만 문제에 대한 우리 입장을 밝혀야 할 순간이 다가오는 압박감을 느꼈다. 우리 보따리를 풀어야 할 차례였다.
그런데 그 시점에서 다시 한번 중국 측의 입장을 확인해야 할 두 문제가 남아 있었다. 첫째, 중국이 한국과 대만의 역사적 특수성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둘째, 중국은 앞으로 북한관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우리와 대만의 특수 관계를 중국과 북한의 혈맹관계에 대칭적으로 적용하면서 중국 측의 입장을 물었다.
한국측 주장 한국과 대만의 관계에 특수성이 있음을 잘 이해해 주기 바란다. 대다수 국민은 한국의 독립 및 정부수립 과정과 그 이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대만으로부터 지원과 협력을 받아왔음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동양 사회의 특수한 미덕인 의리를 쉽게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만은 그 동안 중국과 수교하는 모든 나라에 대해 먼저 단교해 왔으나 최근 정책을 변경하여 신축성을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한국에는 중국이 남북한과 동시에 국교를 갖게 되면 우리도 대만과 공식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여론도 일부 있다.
중국 측이 주장하고 있는 ‘하나의 중국’ 원칙과 같은 맥락에서 한반도도 궁극적으로 ‘하나의 KOREA’로 통일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중국도 이를 환영할 것으로 믿는다. 지금까지 중국은 남북한 관계에서 북한 일변도 정책을 취해오면서 북한과 특수관계를 유지해왔는데 만약 한중 수교를 하게 되면 이를 현실성 있는 한반도정책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렇게 중국에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나는 당시 준비해간 메모에 1975년 김일성과 덩샤오핑의 공동성명에서 중국이 북한을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로 인정하였고 이는 한반도의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점을 적어두었다.
또 유엔의 제 결의와 한일기본조약은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도 기록해 두었다. 그러나 이 대목은 ‘상호신뢰구축에 주안점을 두고 불필요한 논쟁은 자제’하라는 훈령에 따라 실제 발언 때에는 유보했다.)
나는 발언을 마치고 회의장의 분위기를 살폈다. 중국 대표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회의장에 긴장감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한중문화청소년협회(미래숲)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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