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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미래를 만든다] <1> 인공태양 - 핵융합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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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미래를 만든다] <1> 인공태양 - 핵융합에너지

입력
2007.08.0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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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대전 기초과학지원연구원 내 핵융합연구센터 주 제어실. 정면의 대형 스크린에는 흰 불빛과 그래프들이 춤을 추고, 각자 모니터 앞에 앉은 20여명의 연구원들이 저마다 맡은 영역을 체크하고 있다. “방전 됐습니다.” “정상입니다.” 불꽃은 육중한 시멘트 벽 너머 차세대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에서 타올랐다. 미래 에너지 자립화의 꿈도 타오른다. 장장 11년 대역사를 마무리 짓고 9월 14일 준공을 앞둔 KSTAR는 이렇게 미래를 밝힐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까지만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많은 이들이 “현실화할 수 없는 기술”이라고 했고 “우리는 못 한다”고도 했다. “왜 수천억원을 낭비하느냐”는 비난도 있었다. 1952년 러시아에서 처음 토카막(도넛모양 자기장)형 핵융합장치가 개발됐지만, 나오는 에너지량이 투입된 에너지량을 초과하기까지 반세기(1998년 일본)가 걸렸을 만큼 기술발전이 더뎠던 것을 돌아보면 이런 회의적 시각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80년대에야 플라즈마 실험을 시작한 후발주자였다. KSTAR를 짓는 데에만 3,090억원이 들었고, 국제 공동 연구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참여에 8,767억원을 쏟아 부어야 한다. 이후 실증로를 거쳐 상용 핵융합발전소를 짓는 데에는 조 단위의 비용이 필요하다.

KSTAR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이 모든 비난과, 이 모든 위험을, 아니 그 이상을 감수하고 있다. 그래도 태양이 뜨는지 띄워봐야 안다고 그들은 믿는다. 핵융합연구센터 신재인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핵융합기술이 되나 안 되나 논할 시점은 지났어요. 어떻게 경제성을 맞출 것이냐의 문젭니다. 실제 지어봐야 해결할 것 아닙니까?”

그랬다. 지어보니 달랐다. 전선 대신 구리판을 쓰고, 100톤짜리 문 다는 것쯤 중공업으로 잔뼈 굵은 우리에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만들어보지 않은 신소재 초전도 자석을 만들겠다고 달라붙었을 땐 눈앞이 캄캄했다. 삼성종합기술원, 고려제강 등 컨소시엄은 완제품을 수입해 공기를 맞추는 한편, 선재(線材)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10년 만에 첨단 기술 보유자가 됐다. 박주식 KSTAR사업단장은 “ITER측도 자석을 어떻게 만들지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보니 논란은 정리됐다”고 말한다.

“직접 해봤다”에 당해낼 이는 없다. 우리나라는 2003년 회원국 만장일치로 ITER에 가입했고, 우리가 열심히 벤치마킹한 ITER가 요즘은 KSTAR를 벤치마킹하느라 바쁘다. 우리나라는 ITER에 초전도 선재 20%를 납품하며, 토카막 조립을 총괄한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오영국 운영사업부장은 “낮은 출력에서 1,2초 정도 플라즈마를 유지해 본 경험이 전부인 우리는 운영기술에선 따라잡아야 할 게 많다”고 말한다. 내년 첫 플라즈마 발생부터 시작해 2012년까지 진공 초전도 자기장을 유지해 3억~5억도에서 중수소 핵융합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1차 목표다.

2017년까지는 KSTAR 규모에서 최대 출력인 2메가암페어로 300초 플라즈마를 유지, ITER를 미리 시험해보는 역할을 한다. 2025년까지는 실증로에 필요한 기술을 시험할 계획이다. 또 KSTAR는 플라즈마 실험만 가능할 뿐, 전기생산 관련 기술은 ITER를 통해 확보해야 한다.

이르면 2030년대, 늦으면 2050년대 상용화될 핵융합에너지는 자기 생전 완성을 못 볼 중세 건축가들의 대역사와 흡사하다. KSTAR의 주역들은 핵융합발전소를 생전 보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가 핵융합에너지를 쓰게 된다면 그것은 고집스러운 과학자들의 무모한 도전 덕분이다.

◆ 핵융합에너지

수소들이 융합해 헬륨을 만들 때 생기는 에너지. 태양이 밝고 뜨거운 것이 바로 핵융합 현상인데 반응 전후 1,000분의 7의 질량 손실이 E=mc² 공식에 따라 막대한 에너지로 변환된다.

핵분열을 이용한 원전보다 효율적이며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만 남아 깨끗하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핵융합을 일으키기 위해 1억도 이상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기술이 어렵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 이경수 핵융합연구센터 연구부장

“대중이 알지 못할 때 그것을 판단하고, 사회가 필요로 할 때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 과학자의 존재 이유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위대하고 성공적인 것은 시대를 앞섰을 뿐 아니라 앞선 생각을 밀어붙인 점입니다.”

이경수 핵융합연구소 선임연구부장은 오늘날 KSTAR를 있게 한 집념의 과학자다. ‘자원 에너지’는 빈국이나 ‘지식 에너지’에선 강국이 되겠다며 MIT 교수직을 버리고 귀국해 한 우물을 팠고, 투서와 감사에도 꿋꿋하게 버텼다.

“외환위기 때 굶어죽게 생겼는데 핵융합 할 때냐는 비난을 많이 들었습니다. 외환위기로 망할 나라라면 안 해도 됐겠죠. 하지만 살고 싶으면 20~30년 뒤를 대비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 때 투자 안 했으면 우리는 지금 ITER가 실패하기만 바랄 겁니다.”

이 부장의 열정은 많은 이들을 끌어들였다. 초전도 자석 연구에 삼성종합기술원이 참여할 때 “생뚱맞게 삼성이 무슨 초전도냐”며 삼성그룹 반발이 심했지만 당시 강진구 삼성전자 회장이 “반도체 처음 할 때도 이랬다”며 밀어붙였다.

많은 공동연구자들, 지원을 결정한 과학기술부 관료 등을 이 부장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2000년 KSTAR 만든다니까 내게 ‘꿈깨라’던 유럽 과학자들이 이제는 내게 자문을 구할 정도로 한국의 입김은 세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증로 제작은 한국이 1등을 하겠다”고 또 다른 꿈을 꾼다.

“KSTAR야말로 정말 ‘꿈’이었지만 무서워서 안 하지는 않았잖아요. 1등 할 생각이 있으면 실패도 하고 죽기도 하는 거죠. 위험 따지면서 안 하는 나라는 1등 할 준비가 안 된 나라입니다.”

김희원기자

■ KSTAR 건설 진기록은?

KSTAR 건설은 과학자, 공학자, 기술자들의 피땀과 정성이 어린 과정이다. 거대과학과 정밀과학이 융합된 공사 과정은 이랬다.

■ 레미콘 7,000여대 시멘트를 붓다

핵융합특수실험동은 1998년 12월부터 4년간 지었다. 거북선 모양 건물의 한가운데 KSTAR 주장치실은 가로 35m, 세로 50m, 높이 35m의 거대한 방이다. KSATR 주장치에 가열기 등 부속장치가 붙고, 이 장치들을 현장에서 조립해야 해서 기둥 하나 없이 만들었다.

벽 두께가 무려 1.5m. 방사성물질 차폐를 위해서다. 2000년 주장치실을 지을 당시 15톤짜리 레미콘 7,000여대가 밤 새도록 줄을 지어 시멘트를 붓고, 또 부었다. 시멘트량이 5만1,263㎥, 아파트 1,000채를 지을 수 있다. 차폐문은 가로 11.4m, 세로 11.7m로 무게가 500톤이다.

■ 울산에서 대전까지 3박4일

2004년 1월 지름 9.8m, 납작한 원반 모양의 주장치 바닥을 놓는 것으로 KSTAR 주장치 조립이 시작됐다.

이 합금 바닥재 운송은 군 작전을 방불케 했다. 20톤 트레일러를 이용키로 결정한 뒤 차량이 지날 모든 경로 즉 고속도로, 교차로, 진입로, 다리, 터널 등을 철저히 훑어 무게를 버틸 수 있는지, 회전반경이 충분한지를 실사했다.

원반 모양 합금을 반으로 잘랐는데도 차선 3개를 잡아먹어서, 교통량 적은 밤에만 움직여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대전 연구소까지 3박4일이 걸렸다. 운전자 옆에는 연구원이 동승, 시속 50㎞를 넘거나 다른 길로 빠지지 않도록 했다.

■ 맨손 개발한 초전도 자석 선재

KSTAR의 핵심인 초전도 자석 내부에는 지름 0.78㎜의 초전도 선재(線材)가 칭칭 감겨있다. 선재 속에 지름 4.9㎛의 나이븀-주석 합금이 무려 3,078개나 박혀있다.

이 선재와 심은 자장면 뽑듯 길이 늘인 것인데, KSTAR에 들어간 선재의 길이는 총 1만2,000㎞로 지구의 지름에 가깝고, 전체 심을 한 줄로 연결하면 길이는 3,600만㎞로 지구에서 달까지 50번 왕복이 가능하다.

나이븀-주석이라는 신소재를 열처리하면 초전도 효율이 뛰어나리라는 연구결과는 나와 있었지만 실제로 제작해서 핵융합장치에 적용한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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