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임섭(52ㆍ여)씨는 인터넷 쇼핑몰업체의 정규직 웹디자이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그는 ‘못 말리는 컴맹’이었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사람에게도 옮는 심각한 전염병인 줄 알았다. 키보드에 있는 ‘alt’ 키를 치라고 하면 알파벳 a, l, t를 찾아 꾹꾹 눌렀다. ‘마우스가 뭔지도 모르고 솥뚜껑만 운전하던 아줌마’가 일약 컴퓨터 도사가 돼 어엿한 웹디자이너로 활약하게 된 원동력은 간단했다. 열정과 노력이었다.
소씨는 4월부터 인터넷 쇼핑몰 에스이랜드에서 홈페이지와 상품 설명 등을 디자인하고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다. 전업주부였던 그가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진을 취미로 배우면서부터다. 찍은 사진을 자랑하기엔 인터넷 홈페이지 만큼 좋은 곳이 없다는 말에 두 아들과 남편의 전유물로만 생각했던 집안 컴퓨터를 켜게 됐다.
광주광역시에서 지난해 서울 구로동으로 이사 온 그는 2002년 말 집 근처의 동네 문화센터 컴퓨터 강좌를 들으며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문화센터 3개월 과정을 끝낸 뒤 정식으로 웹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2003년 봄에는 광주컴퓨터전문학교에 들어갔다. 이 곳에서 웹디자인 6개월 과정을 배운 뒤 고급 과정 6개월을 더 배웠다.
1년을 컴퓨터와 씨름 했지만 성에 안 찼다. 내친김에 2005년 3월 광주 송원전문대 산업디자인과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해 올 2월 졸업했다. 그는 “전업 주부로 지내다가 하루 7, 8시간씩 젊은이들 틈에서 공부하는 게 처음엔 무척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구직 활동에 본격 뛰어든 것은 지난해 여름부터다. 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이 운영하는 취업포털 워크넷(www.work.go.kr)에 구직 등록을 했을 뿐 적극적으로 이력서를 내진 못했다. 쉰이 넘은 아줌마가 웹디자이너로 일하겠다며 나서는 것이 낯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웹디자인 분야는 감각 뛰어난 젊은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곳이다. 이메일로 서너번 입사 지원서를 보낸 것이 구직활동의 전부였다. 연락을 준 업체는 한곳도 없었다.
스스로 옭아맨 나이라는 덫에서 빠져 나오려 애썼다. 그래서 찾은 곳이 노동부가 운영하는 고용지원센터. 취업 상담과 구직 프로그램을 들으며 자신감을 얻었다. 4월에 지금 다니는 회사로부터 면접 통보를 받았다. 입사가 아니라 “면접이나 한번 보자”는 것이었지만 뛸 듯이 기뻤다. 차분하게 면접을 봤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아들ㆍ딸뻘의 직원 20여명은 그를 ‘언니’ ‘디자이너님’으로 부른다.
그는 “나 때문에 직장 못 구한 젊은이들에겐 미안하지만 지금 생활에 너무 만족한다”며 웃었다. 소씨와 동갑인 이 회사의 한태욱 사장은 “늦은 나이에 대학에서 웹디자인을 배운 열정을 높이 샀고 책임감도 강해 보여 모험을 했는데 채용하길 잘했다”고 흐뭇해 했다.
오전 7시30분께 서울 응암동에 있는 회사로 출근해 일 마치고 구로동 집에 오면 오후 8시 30분 정도. 피곤해도 즐겁다. 인천 기상대에서 일하는 남편 김식영(55)씨와 미혼인 두 아들 경록(31ㆍ회사원) 민균(27ㆍ회사원)씨가 나서서 아침밥을 짓는 등 소씨를 ‘여왕’처럼 모시고 있어 신바람이 난다.
소씨는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은 만고의 진리 같다”며 “남편이 정년 퇴직하면 함께 쇼핑몰을 운영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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