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위암 4기를 이겨낸 사람입니다. 건강하게 살고 있는 저를 보면 지금도 암과 싸우고 계신 환우들에게 조금의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요.” 이동철(39)씨는 위암 4기였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한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위암 4기 생존율은 기껏해야 10% 안팎. 그에게서는 전쟁터에서 이기고 돌아온 용사의 기백까지 느껴졌다.
▦기침 좀 했다고 암이라니
2002년부터 잔기침이 심했던 이씨. 동네 병원에 가봤지만 ‘기관지 천식’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렇게 3년을 보내다가 2005년 초 위암 판정을 받았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겠지만 남 얘기하듯 담담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제일 큰 종양이 6센티짜리로 식도와 위 연결 부위에 있었답니다.
림프선과 간에도 퍼져 있었죠. 더욱 절망적인 것은 CT(컴퓨터 단층촬영) 영상이었습니다. 복막에도 암세포가 모래를 흩뿌린 듯 있었던 겁니다.” 복막뿐 아니라 간 뼈 등 먼 곳까지 암이 옮겨갔다면 수술은 불가능하다. 눈에 보이는 암 덩어리를 제거해도 전신에 암세포가 퍼져 있는 탓에 언제 어디서라도 암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수술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나마 운이 좋았다. 암 환자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하는 항암제 임상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임상시험이라는 게 약제에 대한 반응은 어떤지, 용량은 얼마나 투여해야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 효과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놓쳐서는 안 되는 마지막 한 뿌리의 지푸라기였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항암제를 투여한 지 한 달 만에 위암이 6센티에서 3센티로 딱 절반이 된 것이다. 그러나 희소식도 잠깐, 다섯 달 후 갑작스런 복통과 함께 피를 토하는 급박한 상황이 닥쳤다. 또다시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였다. 헌혈백(400cc)보다 많은 핏덩이를 토하기를 여러 차례. 죽음은 삶보다 그에게 가까이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출혈이나 막자는 생각으로 한 수술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수술 후 병실을 찾은 외과 주치의의 말을 통해 기적은 현실이 됐다. “예상과는 달리 그동안 항암으로 주변 장기에 전이된 암이 모두 사라져서 수술이 훨씬 쉽게 끝났습니다. 위를 100% 잘라낸 후 식도와 십이지장을 바로 연결했고, 전이가 의심됐던 식도와 간 일부를 염려 차원에서 뗐습니다. 무엇보다 손댈 수 없는 복막의 암이 없어져서 다행입니다.”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던 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핸드폰을 꺼내 희소식을 전국 각지의 친지들에게 전했다.
▦웃음과 운동이 원동력
이 씨는 암을 이겨낸 모든 공을 아내에게 넘겼다. 암 진단을 받자마자 전 재산인 화물차와 집을 처분하고, 자신이 힘이 빠질 때마다 불호령을 내리는 야전사령관으로, 배꼽을 빼놓는 개그맨으로 항상 곁을 지켰던 아내. 앞에서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지만 아이 낳고 한 달 만에 몸도 추스르지 못한 채 남편 병시중을 들면서 젖이 불어 화장실에서 속알이 하며 눈물을 삼키던 아내가 없었더라면 벌써 세상을 등졌을 거라는 이 씨의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
그는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운동을 꼽았다. “관찰기간이 끝나고 집에 오니 백일도 안 된 아기가 강보에 싸여 방에 뉘어 있었어요.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네가 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겠냐’는 장모님 말씀에 이제까지 참았던 눈물이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쏟아졌죠.” 이동철씨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아비 없이 클 아들이 눈에 밟히고, 과부가 될 아내가 불쌍해서’ 마음을 다잡았다. 화물차 운전기사로 남부럽지 않은 체력을 과시하던 그였지만 투병기간 동안 화장실도 걸어가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매일 집 근처 왕방산을 오르며 ‘이놈의 암들아 오늘은 100마리만 죽어라’ ‘생존율 10%에 꼭 들 수 있다’는 자기 암시를 던졌다.
▦주치의 ‘예후도 상당히 좋을 듯’
이씨의 주치의인 박숙련 국립암센터 혈액종양내과 박사는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길어야 10개월 살 수 있었던 환자가 종양의 크기가 줄어 수술을 받았고, 항암제를 끊은 채 1년 반 넘게 살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것”이라며 “3개월에 한번씩 CT 검사만 받고 있는데 예후는 상당히 좋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씨의 부인도 완치를 장담한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어느 한 순간도 암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5년이 아니라 수십 년간 건강하게 제 옆에 있을 거예요.”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 암은 예방할 수 있는 질환이다 <2>
우리나라 사람에게 많이 발생하는 암 중에는 식생활 요인과 관련이 있는 암이 많다. 위, 간, 대장직장, 유방, 식도, 췌장, 전립선, 후두, 그리고 폐암이 그 예이다. 암 발생 양상을 보면 4대 암 또는 5대 암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남성은 위, 간, 폐, 및 대장직장 등 4대 암이 전체 발생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고, 여성은 유방, 위, 갑상선, 대장직장, 및 자궁경부 등 5대 암이 약 60%, 여기에 폐와 간암이 보태지면 72%나 된다.
▦고염 식품은 멀리하라: 짠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식생활은 암 발병 위험을 5~6배 높인다. 소금 자체는 발암물질이 아니지만 고농도의 염분은 세포에 손상을 주고 주위에 있는 발암물질의 침투를 쉽게 해주는 발암보조물질(co-carcinogen) 역할을 한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위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보고가 있었는데, 심층 분석을 통해 된장이나 김치가 아니고 짠맛이 주범으로 밝혀진 바 있다. 소금은 아무리 많이 섭취해도 하루 10g을 넘겨선 안 된다. 우리나라 전통식품 중에는 짠 것이 많으며, 인스턴트식품이나 가공식품은 일반적으로 염분 농도가 높다는 점을 잊지 말자.
▦불에 직접 굽는 고기, 생선과 훈제식품을 멀리하라: 고기가 불에 타면 단백질이나 아미노산이 변성을 일으켜 헤테로사이클릭아민(HCA)이 생긴다. 고기 구울 때 기름이 불꽃에 떨어져 불완전 연소가 일어나면 까만 연기가 올라와 고기에 붙는데, 이 연기의 주성분은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PAH)다. HCA와 PAH는 모두 제1군 발암물질로 분류되어 있으며, 특히 PAH는 불완전 연소한 자동차 배기가스의 주성분으로 잘 알려진 발암물질이다. 따라서 까맣게 탄 부분을 먹는 것은 여러 종류의 발암물질을 직접 섭취하는 것과 같다. 최근 외국에서도 스테이크처럼 고온으로 요리한 음식이 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질산염으로 처리한 가공식품을 피하라: 햄, 소시지 등 육류 가공식품의 발색제 또는 식품보존제로 많이 쓰이는 질산염은 입과 위 안의 환경(세균 등)에 따라 아질산염으로 환원되고, 아질산염은 동반된 다른 음식의 아민류(이차아민 또는 알킬아마이드)와 반응해 발암물질 N-니트로소 화합물을 생성할 수 있다. N-니트로소 화합물은 실험실에서 실험적으로 암을 일으킬 때 사용하는 발암물질의 하나다.
▦고지방식을 피하라: 동물성 지방의 섭취를 늘리면 유방암, 대장암, 전립선암, 췌장암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 고지방식은 비만을 유발하고 체내 내분비 대사에 영향을 주어 암 발병 위험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대로 과일, 채소, 섬유소를 많이 섭취하면 암 예방 효과가 있다.
▦항산화 식품의 섭취를 늘려라: 체내에 산소 유리기(oxygen radical)가 많아지면 세포 유전자 손상의 빈도도 증가한다. 이를 ‘산화 부담’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세포의 DNA를 손상하는 직접적인 도구는 대부분 산소 유리기이다. 따라서 체내의 산화 부담을 감소시키는 방법은 암 예방법이 된다.
과일, 채소, 콩, 발효식품 등은 산화 부담을 줄이는 항산화 식품이다. 비타민도 강력한 항산화 기능이 있어 암 방어요인으로 분류된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에서는 고기를 많이 먹는 미국인에게 과일이나 채소를 하루에 9회 섭취하라고 권장한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채소를 많이 먹으므로 9회까지는 아니지만 고기를 먹을 때는 과일과 채소를 평소보다 많이 먹는 게 바람직하다.
안윤옥 대한암협회장
■ 암 이것이 궁금해요/환자 잘 먹어야 회복 빨라 정상적인 식사 중요
Q: 아버지께서 얼마 전 대장암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항암화학요법을 하는 동안 식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균형 잡힌 영양 섭취는 환자 치료에서 어느 치료법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대체적으로 잘 드시는 환자가 감염에 강하고, 부작용이 적으며, 회복도 빠릅니다. 암을 치료하는 특별한 식품이나 영양소는 없습니다. 충분한 열량과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 등을 공급할 수 있는 갖가지 음식을 골고루 드시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암 환자는 질병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메스꺼움, 구토, 식욕부진, 입안 염증, 입맛 변화 등 항암치료에 따른 부작용 때문에 음식을 잘 드시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호자는 가능한 한 아프기 전처럼 정상적인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입 속 염증으로 통증이 있다면 연고를 바르고, 운동을 부지런히 하는 것도 식사에 도움이 됩니다.
문의 국가암정보센터(1577-8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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