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샘도 말라 버렸어요. 더 이상 버틸 기운조차 없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악몽의 보름’을 보내고 있는 21명의 피랍 한국인 만큼이나 이들의 무사귀환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의 가슴도 타 들어가고 있다.
경기 분당 피랍가족대책위원회에 모여있던 가족들은 1일 피랍 이후 극도의 혼란 속에 가장 긴 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날 오후 늦게 ‘인질구출 군사작전이 개시됐다’는 등의 일부 외신보도가 잇따르자 가족들은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다”며 걷잡을 수 없는 패닉 상태에 휩싸였다.
앞서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유수프 아마디가 이날 AFP통신 등과의 전화통화에서 “협상 시한 이후에는 더 많은 인질들이 살해될 수 있을 것”, “만약 아프간 정부가 군사작전을 개시하면 모든 인질들이 살해될 것”이라고 위협의 강도를 높인 상황에서 ‘비보’가 또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오전까지만 해도 아프간 현지에 파견된 한국 정부 대표단이 인질들을 직접 대면할 가능성이 흘러 나왔던 터여서 가족들의 충격은 더해 보였다.
“무력진압이 자칫 모두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두려움에 앞은 캄캄했고 두 귀는 멍했다. 두 손 모아 사실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충격을 받은 일부 가족들은 “올 것이 왔다”는 허탈함에 정신을 놓은 듯 했다. 말을 잊고 멍하니 하늘만, 천장만을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고 배형규(42) 목사, 심성민(29)씨의 연이은 주검 앞에 절대로 놓지 않겠다던 실낱 같은 희망의 끈도 어느새 점점 느슨해 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아프간 이슬라믹 프레스(AIP)가 군사작전 개시를 ‘긴급’ 타전했다 기사를 삭제한 데 이어 이를 보도했던 로이터 통신도 곧 오보임을 밝히고, 이날 밤 늦게 아마디도 추가 살해 언급 사실을 전면 부인하자 분위기는 이내 반전됐다.
차성민(30) 피랍가족 대책위원장은 “군사작전에 들어갔다는 보도를 처음 접하고는 가족들이 너무나 놀랐다”며 “탈레반 대변인의 피랍자 추가 살해 발언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돼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가슴을 쓸어 내렸다.
앞서 탈레반이 새로 제시한 9차 협상시한(오후 4시30분)도 ‘무사히’ 지나가자 가족들은 한시름 놓으면서도 혹시 모를 불안함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야 했다. 한 피랍 가족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피랍자 모두가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겨우 말을 이었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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