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제> 노동의 참의미에 대해 말하는 제시문 (가)의 입장이 오늘날의 노동에는 적용 가능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논하고, 자신의 입장을 바탕으로 제시문 (나)의 현상에 대해 평가하라. (800자 내외) 논제>
제시문 (가) 다시 펼쳐본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는 많은 생각거리를 주었다. 데니소비치는 수용소에 갇혀 강제노동에 동원되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과업을 통해 역설적으로 어떠한 순수한 기쁨을 느낀다. 심지어 사형수에게도 노동의 의미는 각별하다고 한다. 사형수는 형이 집행될 때까지 미결수이므로 작업사역을 시키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노동에 목마른 이들은 징벌방을 각오하고라도 손을 놀려 뭐라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는 버린 빵 봉지로 장신구를 만드는 하잘 것 없는 일도 ‘노동’의 의미를 지닌다. 노동은 인간에게 자긍심, 존엄성, 독립심, 성취감을 불어넣어 주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적인 조건인 것이다. 이하 중략 이반>
제시문 (나) 2000년 경제활동인구 월평균 임금을 살펴보면, 상용직 근로자가 154만원, 임시직 근로자가 85만원, 일용직이 64만원으로 고용 형태별 임금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상용직과 임시ㆍ일용직 간에 격차가 컸다. 같은 임시ㆍ일용직이라고 하여도 직접 고용된 임시ㆍ일용직이 간접 고용되었거나 특수 고용(독립 도급 제외)된 임시ㆍ일용직보다는 월평균임금이 높았다. 특히 재택 근로 임시직 근로자의 경우 월평균 임금이 42만원, 일용직 근로자는 29만원을 벌어 저임금을 수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하 중략
1. 출제 의도와 논제 분석
먼저 제시문과 논제에서 드러나는 출제 의도를 다각적으로 추적해 보자. 출제의 초점은 현대사회에서의 노동이 가지는 문제점을 생각해 보고, 노동의 본래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대안이 마련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는 데에 맞추어져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면 우선 노동이 가지는 본래적 가치에 대해 정리할 수 있도록 하고 현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노동의 본래적 가치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스스로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논제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현실을 대입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논제를 분석해 보면, 수험생은 세 가지의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먼저 ‘노동의 참의미’에 대한 제시문 (가)의 입장을 파악하여 정리해야 하고, 다음으로 그것이 왜 오늘날의 노동에 적용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논술자의 입장에서 밝혀야 한다. 그런 다음 그 입장을 바탕으로 제시문 (나)의 현상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에 대하여 한 평가해야 한다.
2. 제시문 분석과 논제 해결 방향
제시문 (가)는 전체적으로 보아 노동이 인간에게 가지는 긍정적 의미를 서술하고 있다. 즉, 노동은 인간 스스로 자긍심과 성취감을 갖게 하여 자신이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행위라고 본다. 따라서 인간은 노동을 통해 기쁨을 얻게 되는데, 이 때 노동은 어떤 외적인 억압에 의해 강요된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의지의 표현이며 자기실현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그러한 노동의 긍정적 의미를 오늘날의 노동에 적용할 수 없는 이유, 즉 현대사회에서의 노동이 노동의 본래적 가치를 어떻게 상실했다는 것인지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제시문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가 없으므로 수험생이 채워 넣어야 한다. 즉, 노동이 더 이상 자긍심과 성취감을 갖게 하거나 인간의 존재 의미를 확인시켜 주는 자기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생계 유지의 수단이나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여 노동은 그 자체로 기쁨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해 내어야 글이 완결성을 얻게 된다. 이 때 타락의 원인을 자본주의적 속성과 연결 지을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제시문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지위에 대한 글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임금 수준에 있어서는 정규직 노동자에 크게 미치지 못하며 반면 고용보험ㆍ의료보험ㆍ국민연금 가입율은 현저하게 낮다. 이에 대하여 평가하기 위해서는 제시문 (가)에서 파악한 내용을 (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자연스럽게 연결해야 하는데, 이때에도 그 개선 방향까지 언급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이와 관련하여 바람직한 논술 방향을 제시해 본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자본주의적 속성에서 기인한 노동의 타락이 낳은 결과로, 이 장기적으로 해소되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이 자기표현?수단이 될 수 있도록 노동 구조를 개선해가야 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우선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에 합당한 대가를 받을 함으로써 노동을 통해 일어나는 비인간화를 막아야 어떤 노동자도 가치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점에 대한 인식이 확립되어야 하며, 경제적인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도구로서만 인식되고 활용되는 상황은 해소해 나가야 이런 맥락에서 동일한 종류, 강도의 제공하고도 임시ㆍ일용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과 차별적인 처우를 받아야 하는 현실은 개선되어야>비정규직>
3. 학생의 글 강평
①제시문 (가)에서는 인간이 노동을 꼭 해야만 하는 필연성을 제기하고, 노동을 통해 인간이 기쁨을 느끼고 더 나아가 인간답게 될 수 있다고 본다. ②하지만 오늘날의 노동은 필연성을 떠나 개인의 의사에 따라 선택이 가능하다. ③그리고 노동을 통해 기쁨을 느끼기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벌이를 하는 것이 오늘날의 주된 노동의 목적이다. 또한 인간의 사회화 역시 노동을 통한 것보다는 교육을 통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④따라서 제시문 (가)의 노동관과 오늘날의 노동관은 큰 차이를 보이므로 동일시할 수 없다.
제시문 (나)에서는 상용직 근로자에 비해 적은 소득과 열악한 보험 환경을 가진 비정규직 근로자의 현 상태를 수치화하여 제시하고 있다. ⑤이는 갈등론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그 사회의 제도가 비정규직 근로자를 소홀히 대하는 이해 관계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보험 가입율과 임금을 높이려면 제도적인 측면의 개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제시문에 나와 있는 ⑥법적 제도의 적용을 엄격히 적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험 가입 조건이 충족되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를 위반할 시 적용되는 처벌의 수위가 낮아서 그럴 수도 있기 때문이다. ⑦사실상 고용주와 고용자의 관계는 대등하기보다는 고용자의 지위가 제시문 (나)에서 제시된 것처럼 불리하다. 그리하여 고용자 스스로의 힘으로는 문제 해결이 힘든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제도적 측면에서 근본적인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이런 불평등한 관계의 사례는 계속 나타날 것이다.
전체적으로 비교적 논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고, 제시문의 핵심 내용을 잘 포착하여 이를 바탕으로 논제의 초점을 잘 포착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의 충실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논술문 속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주요 어구들이 여럿 누락되어 있다. 그리고 전문 용어 등이 오용(誤用)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형식면에서는 ‘중심 문장 + 뒷받침 문장’으로 형성되는 단락 구조에 대한 인식과 연습이 필요하다. 문장이 길어져 성분 간의 호응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수험생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이다.
① 시작이 좋다. 제시문 (가)를 분석한 내용으로 상당히 유연하게 진술되어 있다.
② 진술 의도와 형식은 좋으나, 내용에서 대립을 이루는 항목이 정확하게 설정되지 않아서 논지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③ ‘그리고’라는 접속어가 부적절하고, 성분 간의 호응 관계도 정확하지 않다.
(문장 수정 예)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빈부 계층간의 격차가 심화되면서, 인간은 노동을 통해 순수한 기쁨을 얻고, 그것이 자기 실현의 계기로 작용하기보다 단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④ (문장 수정 예)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제시문 (가)에 나타난 노동관을 오늘날의 노동현장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⑤ 현 사회 제도상의 부당한 관행이 갈등을 야기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현상에 대하여 평가한 내용이다. 그런데 논제에서 ‘현상에 대한 평가’를 요구한 의도가 논리적인 사고력과 논증력 측정에 있다고 볼 때, 이 문장만으로 그것을 입증하기에는 분량이 부족하다.
⑥ 고용보험법, 의료보험법, 국민연금제도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좋겠다.
⑦ 논술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의도대로 살아나지 않고 있다.
김인봉ㆍEBS 논술강사ㆍ서울 잠실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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