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3공화국 총리를 지낸 조르주 클레망소는 다른 정치인들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던 모양이다. 한 기자가 "당신이 아는 가장 나쁜 정치인은 누구인가?"라고 묻자, 그는 이리 답했다. "대답하기 정말 어려운 물음이다. 이 자야말로 가장 나쁜 정치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꼭 더 나쁜 자가 나타나니 말이다."
클레망소 자신은 좋은 정치인이었을까? 그의 사생활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공인 클레망소에게 나는 그럭저럭 호의적이다. 로비 사건에 휘말려 10년 간 정계를 떠난 일이 있긴 했으나, 클레망소는 대체로 시대정신의 편에 섰다.
정치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언론인으로서도 그랬다. 그가 발행한 신문 <로로르> 는 드레퓌스 사건 당시 직업적 애국자들에게 맞서 드레퓌스를 옹호하는 지식인들의 거점이었다. 의회와 내각의 중책을 맡으며, 드레퓌스는 8시간 노동제 도입을 비롯해 프랑스 노동자들의 생활조건 개선에 적잖이 이바지했다. 로로르>
● 이명박, 한국정치의 신비
좋은 정치인이라는 게 꼭 윤리적인 정치인이라는 뜻은 아닐 게다. 정치는 권력을 배분하고 공동체의 안녕을 보장하는 기술이지 도덕심을 고양하는 장치는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주도적 정치인들의 윤리가 시정의 장삼이사에도 못 미친다면, 그 사회의 앞날은 어둡다. 정치인들의 윤리적 빈곤은 궁극적으로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켜, 권력의 합리적 배분과 공동체의 안녕 보장이라는 정치 본연의 기능마저 위협할 것이다. 정치학은 윤리학이 아니지만, 정치는 윤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 나가겠다며 이름을 들이밀고 있는 정치인들 가운데 최소한의 윤리에라도 자신을 구속하는 이가 있을까? 집권 가능성이 제로인 민주노동당 사람들을 제외하면, 그렇다는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이명박씨는 신비로움 그 자체다. 저런 과거를 지닌 이가 어떻게 저 자리까지 가 저 정도의 지지를 받고 있을까 신비롭다는 말이다.
친족들끼리의 괴상한 거래나 규모를 알 수 없는 부동산 따위와 관련해 그에게 쏠리고 있는 온갖 의혹들은, 그가 설령 평균적 한국인 이상의 '전과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대통령 후보 자격을 위태롭게 하기에 충분하다.
박근혜씨가 극단적 보수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은 그가 대한민국의 과거를 상징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 자체가 비윤리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박근혜씨가 그 과거의 가장 참혹한 상처를 뭉개고 있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독재자의 딸이라고 그를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지만, 독재자의 살인행위를 그가 두둔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다.
사법부가 재심 끝에 인혁당 사건에 무죄판결을 내렸을 때, 박근혜씨는 그것을 자신에 대한 정치공세라 일축했다. 그의 태도엔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것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교문수석을 지냈던 이가 그의 반응을 두고 '인간에 대한 절망'을 느낀다고까지 극언했을까? 그 자신이 소위 '퍼스트레이디' 노릇을 하던 시절 공권력에 무고하게 살해된 이들에 대한 박근혜씨의 이 고집스러운 냉혹함은, 그가 다스릴 대한민국을 전율로 상상하게 한다.
● 박근혜와 '인간에 대한 예의'
소위 범여권의 한탕주의자들에게서도 최소한의 윤리적 기품을 찾기 어렵다.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은 제 당을 걷어차고 나온 뒤 난데없이 햇볕정책의 전도사로 변신한 손학규씨에게 주로 쏠리고 있지만, 그 쪽의 소위 예비주자들 가운데 손학규씨의 기회주의를 떳떳이 비판할 수 있는 이가 도대체 누구인지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얼마쯤 기회주의적이겠지만, 민심을 내걸고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이들의 기회주의는 급이 다르다.
그들 가운데 하나를 가장 나쁜 자로 꼽는 순간, 더 나쁜 자가 떠오른다. '차라리 노무현이 나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 순간, '노무현의 눈물'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눈물이 포개지며 속이 메스껍다. 남의 윤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다 보면 늘 내 발 밑이 불안하다. 지금도 그렇다. 덥다.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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