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생이 됐는데 미팅 한 번 못했어요. 딱 일주일만 남들처럼 대학생활을 해봤으면….”
유도 최연소 국가대표 왕기춘(19ㆍ용인대)은 머리를 긁적였다. 태극마크를 너무 빨리 가슴에 단 탓에 학교에 가볼 틈조차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을 읽고,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저녁엔 숙제도 하고 TV도 보고 싶어요.”
“왕기춘, 뭐해!” 태릉선수촌을 감싼 푸른 하늘을 바라보던 왕기춘의 상념은 여자 70㎏급 국가대표 2진 박가연(21ㆍ용인대)의 목소리에 깨졌다. “너 뭐하니? 설마 인터뷰? 기춘이 너 정말 많이 컸다.”
정읍의 벌거숭이 꼬마 왕기춘
왕기춘은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인 1988년 9월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왕태연(50)씨는 서울올림픽에서 이경근, 김재엽이 금메달을 따는 걸 보고 “우리 기춘이도 나중에 올림픽에서 우승하도록 유도를 시켜야지”라고 결심했다. 어머니의 태몽도 금 두꺼비였다고 전했다.
아버지가 기억하는 아들 기춘은 천둥벌거숭이였다. 신발도 신지 않고 벌거벗은 채 정읍의 산과 들을 뛰어다녔다. 6세 때 서울로 이사한 왕기춘은 남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유도장을 다녔다. 그러나 온순한 성격을 지닌 촌놈은 걸핏하면 돈을 뺏기는가 하면 얻어맞고 다녔다. “유도선수라고 소문나자 애들이 안 때려서 다행이었어요. 저는 겁이 많아서 싸움을 싫어했거든요.”
이원희의 그림자에서 경쟁자로
왕기춘은 지난해 도하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이원희의 훈련파트너로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원희 형을 너무 좋아해서 함께 훈련하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어요. 원희 형과 운동하면서 실력이 부쩍 늘었고, 배운 기술도 많아요.” 그러던 그가 이원희가 갖고 있던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이원희가 발목 수술을 결정하자 73㎏급 국가대표는 이원희의 훈련파트너에서 ‘천적’으로 성장한 김재범(KRA)이 유력했다. 그러나 또 다른 그림자였던 왕기춘이 2차 선발전(3월)에서 이원희를 꺾은 데 이어 2,3차 선발전 결승에서 김재범을 연거푸 이기면서 최연소 국가대표가 됐다. 19세의 나이로 국가대표 1진이 된 건 지난 97년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최용신에 이어 두 번째다.
한국을 대표하는 유도선수 되고파
왕기춘은 내달 13일부터 브라질에서 벌어지는 세계선수권에 출전한다. “실력이 부족한 걸 느끼기 때문에 국가대표가 됐지만 화가 나요.”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김재범과의 선발전 결승전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단다. 왼쪽, 오른쪽 업어치기와 굳히기 등 기술은 좋지만 이원희처럼 상대를 한판으로 메치는 정교함이 떨어진다는 반성이 잇따랐다.
“국가대표 2진으로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던 아시아선수권(5월)에서 1회전 탈락했습니다. 일본의 이나자와 마사토에게 되치기를 당했는데 잠깐 기절했었거든요. 한국유도의 자존심을 구겼다는 생각에 창피합니다.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아시아선수권의 악몽을 씻고 싶습니다.”
이상준 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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