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 본회의가 30일(현지시간) 미 의회 역사상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은 미국이 일본의 역사왜곡을 저지하기 위해 가장 강력하면서도 지속력 있는 수단을 동원했음을 의미한다.
아시아의 역사 문제에 대해 미 정부가 직접 개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의회가 나서 국제사회에 연쇄적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는 고도의 국제 정치ㆍ외교적 의미가 함축된 대일 경고를 발한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의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일본 정부의 ‘역사적 만행’은 이제 앞으로 미 의회에 의해 가장 높은 수준으로 규탄됐다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이번 결의안 채택은 이라크전 등으로 궁지에 몰린 미국이 일본과의 동맹강화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점에 이뤄진 것이어서 진정성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취임 이후 한층 노골화한 일본의 우경화를 미국적 ‘양심’에 비춰 볼 때도 더 이상 용납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올바른 역사에 근거하지 않고는 동북아를 무대로 한 한미, 한일, 미일 간 동맹ㆍ우호 관계도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기 어렵다는 점을 미국이 자각하기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미 의회는 미일 관계의 단기적 손상을 감수하는 것이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장기적 국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미 하원은 6월말 외교위를 거쳐 본회의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키기까지 동맹임을 앞세운 일본의 막강한 로비와 압박에 직면했으나 굴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정의’의 주체로 세울 수 있음을 보여줬다. 미 의회가 이러한 인식과 행동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미국의 한인 동포사회가 ‘풀뿌리 운동’을 통해 역량을 발휘한 것은 두고두고 평가 받을 만 하다.
이번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미 행정부의 향후 정책 방향에 직ㆍ간접적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미 행정부는 이제까지 2차 대전 전승국임에도 불구, 아시아 지역의 과거사는 당사자들간의 문제라는 책임 회피성 정책으로 일관해 왔으나 이런 자세는 이제 일정 부분 제동이 걸릴 수 밖에 없다.
제한적이지만 일본 내 보수 우익 정치인이나 전문가들의 향후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역할도 기대된다. 이들이 국내 정치적 이유로 노골적인 발언을 하더라도 미 의회가 침묵할 때와 그렇지 않고 계속 비판의 목소리를 낼 때와는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