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이름이나 나라이름이나 강이름 같은 지명은 고유명사다. 고유명사는, 그 정의에 따라, 누가 부르든 똑같아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크게 다르다. 괴테의 동포들은 제 나라를 도이칠란트라고 부르지만, 프랑스어 사용자들은 그 나라를 알마뉴라 부르고 체코어 사용자들은 네메츠코라 부른다. 영어 사용자들에겐 이 나라가 저머니고 한국어 사용자들에겐 독일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가족들과 얘기할 때 제 고향을 빈이라 불렀겠지만, 케임브리지대학의 학생들 앞에서는 비에너라 일컬었을 것이다. 이 유대계 철학자가 태어난 도시를 세르비아 사람들은 베치라 부르고, 슬로베니아 사람들은 두나이라 부른다.
케임브리지의 비트겐슈타인은 제가 떠나온 나라를 부를 때도, 입에 익은 외스터라이히를 제쳐두고 오스트리아라 했을 게다. 한국인들도 이 철학자의 출신 국가를 부를 때, 영어 사용자들을 본떠, 오스트리아라 부른다. 현대한국인들은 다른 나라의 이름을 부를 때 영어식 이름을 얼추 베끼는 일이 적지 않다.
잉글랜드 중남부를 적신 뒤 북해로 흘러드는 강을 잉글랜드 사람들은 템스라 부르지만, 영불해협 건너편에선 타미즈라 부른다. 잉글랜드라는 지명도 그 프랑스 사람들에겐 앙글테르다. 그들에겐 스코틀랜드도 에코스고, 웨일스도 페이드갈이다.
이렇듯 땅이름은 그 땅에 사는 사람과 그 땅 바깥에 사는 사람이 서로 달리 부르는 일이 드물지 않다. 그 땅에 사는 사람이 부르는 이름을 엔도님(endonym. 어원적으로 ‘안쪽 이름’이라는 뜻) 또는 오토님(autonym. ‘스스로 쓰는 이름’이라는 뜻)이라 하고, 그 땅 바깥에 사는 사람이 같은 곳을 가리켜 부르는 이름을 엑소님(exonym. ‘바깥 이름’이라는 뜻)이라 한다. 이를테면 에스파냐라는 나라이름은 엔도님이고, 스페인은 같은 곳에 대한 영어 엑소님이다.
엔도님과 엑소님은 도이칠란트와 네메츠코와 저머니의 예에서처럼 어원을 달리 하는 일도 있지만, 대개 뿌리를 공유한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엑소님은 엔도님의 변형이다.
런던과 론드레스(스페인어 엑소님), 파리와 파리지(이탈리아어 엑소님), 로마와 롬(프랑스어 엑소님) 따위가 다 그렇다. 어메리커(아메리카)와 미국은 설핏 보기에 전혀 다르지만, 한국어 엑소님의 첫 음절 ‘미’는 엔도님 어메리커의 둘째 음절 ‘메’에서 온 것이다.
어떤 엑소님은 엔도님의 철자를 그대로 가져와 발음만 조금 달리 하기도 한다. 독일의 수도를 영어권 사람들은 벌린이라 부르고 프랑스어권 사람들은 베를랭이라 부르지만, 이 이름들은 엔도님 베를린(베얼린: Berlin)과 철자가 같다.
동아시아 나라들이 이웃나라의 지명에 대해 쓰던 엑소님(이를테면 도쿄의 한국어 엑소님 동경이나 베이징의 한국어 엑소님 북경)도 언어들이 제가끔 겪은 음운변화와 그에 따른 특정 시점의 음운체계를 반영한다.
서울을 일본사람들이 소우루라 부르는 것도 일본어 음운체계와 관련이 있다. 사실 이 경우엔 소우루를 서울과 구별되는 엑소님으로 인정해야 할지조차 모호하다.
더 미묘한 경우는 스페인어 이름을 지닌 미국 도시들이다. 예컨대 로스앤젤레스를 스페인어권 사람들은 로스앙헬레스라 부르는데, 이 둘을 엔도님과 엑소님의 관계로 봐야 할 것인지, 또 그렇게 본다면 어느 쪽이 엔도님인지가 또렷하지 않다.
애초에 거기 정주해서 ‘천사들’이라는 뜻의 이 이름을 붙인 것이 스페인어 사용자들이었고, 지금도 그 도시에는 스페인어 사용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로스앙헬레스가 엔도님인 것이다. 로스앤젤레스는 로스앙헬레스를 영어식으로 읽은 것일 따름이다.
엑소님은 대상 장소가 그 장소 바깥 사람들에게 큰 중요성을 지녀서 일찍부터 알려져 있을 때 태어난다. 그래서 수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가 오랜 유럽 도시들은 대체로 엑소님을 지니고 있다.
이탈리아의 파도바, 토리노, 제노바는 프랑스인들에게 각각 파두, 튀랭, 젠이다. (사실 파도바와 토리노와 제노바는 표준이탈리아어 이름일 뿐, 그 지역 방언으로 부르는 진짜 엔도님은 외려 프랑스어 엑소님에 설핏 가깝다. 그러나 이쯤에서 멈추자.)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축적된 시간의 무게다. 한 예로 스페인의 톨레도와 코르도바의 경우를 보자. 이 도시들을 프랑스인들은 각각 톨레드, 코르두라 부른다. 그런데 스페인 사람들은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제 조국의 도시이름을 여럿 가져다 썼다.
그래서 아메리카에도 톨레도와 코르도바라는 도시가 생겼다.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이 도시들은 프랑스인들에게 그 중요성이나 지명도가 그리 크지 않았으므로, 프랑스어 엑소님을 낳지 못했? 그래서 아메리카의 톨레도와 코르도바는 프랑스어권에서도 그냥 톨레도와 코르도바다.
그러나 이 원칙이 늘 고스란한 것은 아니다. 유럽인들이 근대 이후 유럽 바깥에 세운 도시의 이름들도, 그 뜻이 명확하거나 그 도시를 둘러싼 식민 모국들끼리의 드잡이가 있었을 땐, 더러 엑소님을 지니게 된다.
예컨대 미국의 뉴올리언스를 프랑스어권 사람들은 누벨(新)오를레앙이라 부르고, 뉴욕을 스페인어권 사람들은 누에바(新)요르크라 부른다. 나라이름의 예로는, 코트디부아르(‘상아 해안’이라는 뜻이 프랑스어)를 아이보리코스트라 부르는 영어 사용자들의 관행을 지적할 수 있겠다.
영토분쟁에 매개돼 민족주의가 특별히 고조돼 있을 때, 엑소님과 엔도님은 쉽사리 자리를 바꾼다. 적잖은 일본인들에겐 다케시마가 엔도님이고 독도가 그 섬에 대한 한국어 엑소님일 테다.
나라이름들의 한국어 엑소님이 적지 않고 그 상당수가 영어 엑소님을 얼추 베끼고 있는 데(예컨대 스페인, 헝가리, 폴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러시아 등) 견주면, 도시이름에선 그런 예가 한결 적게 발견된다. 헤이그나 코펜하겐이나 리스본처럼 영어 엑소님을 대강 베끼는 경우도 있지만, 프라하, 베오그라드, 모스크바, 부쿠레슈티, 바르샤바처럼 엔도님에 가깝게 불러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
현지 사람이 부르는 이름으로(곧 엔도님으로) 지명을 불러주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일이긴 하겠으나, 엑소님의 발생을 기술적으로 막을 길은 없다. 언어 관행을 한꺼번에 바꾸기도 쉽지 않고, 앞서 지적했듯 엑소님은 대개 해당 언어의 음운체계에 엔도님이 적응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언어의 독특한 음소들과 음운조직 방식을 다른 언어들로 고스란히 옮겨낼 수는 없다.
역사의 기억과 욕망도 개입한다. 동로마제국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그리스(이 한국어 엑소님 자체가 헬라스 또는 헬라다의 영어 엑소님을 베낀 것이다) 사람들이 콘스탄티누폴리라는 전통적 이름을 버리고 터키(역시 튀르키예의 영어 엑소님을 베낀 것이다) 최대의 도시를 이스탄불로 부르기는 힘들 게다. 그리스 사람들의 역사적 욕망 속에서 그 도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라는 첫 기독교 군주와 쉽사리 분리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공동체의 역사에 맞버티는 개인사의 무게가 개입할 때도 있다. 프로이트의 고향은 체코의 프르지보르다. 그가 태어날 때 프르지보르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속해 있었던 터라, 독일어 이름 프라이베르크로 흔히 불렸다. 그래도 프로이트의 전기 작가는 그의 고향을 프르지보르라고 기술할 수 있을 게다. 이 도시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프로이트의 생애와 밀접히 관련돼 있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칸트의 경우라면 어떨까? 아마도 칸트의 전기 작가가(그가 러시아인인 경우를 빼고는) 이 철학자의 고향 쾨니히스베르크를 러시아어 이름 칼리닌그라드라 기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 러시아에 속해 있는 이 도시가 칸트 당대엔 프로이센에 속해 있었다는(다시 말해 그 당시엔 쾨니히스베르크가 엔도님이었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이유는, 쾨니히스베르크라는 이름이 칸트의 생애와 너무 밀접히 이어져 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이 연재물에서 지금까지 둘러본 이베리아 반도와 중부-동부 유럽 도시들을 나는 대체로 엔도님에 가깝게 불렀다. 그것은 그 도시들의 한국어 엑소님이 엔도님과 거의 일치했다는 뜻이다. 두 예외는 리스본과 부다페스트다. 이 도시들의 엔도님은 각각 리주보어, 부더페슈트에 가깝다.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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