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는 지난 달 아시안컵을 치르면서 또 한 차례 홍역을 겪었다. 핌 베어벡 감독 체제로 나섰던 대표팀은 수적 열세에도 일본을 꺾는 등 소기의 성과(3위)를 거두기는 했지만 고질적인 한국축구의 난맥상을 드러내면서 감독의 도중하차라는 고비를 맞았다.
자진 사퇴라는 모양새를 갖추긴 했지만 성적 부진과 부정적 여론에 밀린 베어벡 감독의 불명예 퇴진은 거스 히딩크 감독 이후 벌써 네 번째다. 5년 여 만에 5번째 감독 선임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가장 부각된 골 결정력 부재는 근래 드러난 문제가 아니다. 10년 전에도 그랬다. 측면 공격에만 의지한다는 단조로운 전술도 마찬가지다.
감독의 책임이 크겠지만 선수들도 일정 부분 유한 책임을 져야 한다. 감독 평가의 바로미터가 성적임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지 5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 한국축구의 현실이 서글플 뿐이다.
물론 한일월드컵 이후 박지성 이영표 등이 세계 최고의 무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기는 했다. 하지만 프로축구 K리그는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 처지이고, 대표팀 축구는 높아진 팬들의 눈높이에 한참 모자라는 형편이다.
차기 대표팀 감독의 선정 권한을 갖고 있는 대한축구협회와 기술위원회는 결코 서둘러서는 안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한 검증을 거쳐 한국축구의 운명을 맡겨야 한다. 한국축구의 백년대계를 위해 어떤 감독이 선임돼야 할지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한다면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카리스마(Charisma), 둘째는 자신감(Confidence), 마지막으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즉 3C를 갖춘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차기 감독의 조건을 보면 우선 감독이 선수들을 장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스타급 선수들이고 보면 개성이 강한 집단이다. 따라서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선수들의 개성을 조화시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려면 카리스마가 절대 필요하다.
특정 스타에 휘둘리거나, 학맥이나 지연에 의해 분파가 형성되면 그라운드에서 제 능력을 보여주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카리스마는 감독 자신의 경력도 중요하겠지만 불편부당하지 않게 오로지 실력에 따라 선수를 기용하는 데서 나온다.
두 번째는 자신감이다. 23명의 대표선수를 이끌려면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행여 여론의 뭇매를 맞더라도 자신의 축구철학과 색깔을 구현할 수 있어야 하고, 어떤 강팀을 만나거나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더라도 감독이 흔들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감독이 먼저 주눅들거나 자신감을 잃게 되면 그 팀은 싸워보나 마나 패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일방적인 상의 하달은 팀 분위기를 와해시키는 암적 존재다. 감독과 선수들이 허물없이 자유자재로 의견 교환을 할 수 있어야 팀의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감독의 고민이 무엇인지, 선수들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서로 '나 몰라라' 방관한다면 그 팀은 벌써 망가진 조직이다.
무기력한 플레이 끝에 3위에 그친 아시안컵 후유증 때문에 벌써부터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걱정하는 팬들이 많다. 이번의 차기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이 한국축구의 미래를 위한 마지막 성장통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동은 스포츠팀장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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