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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리콴유의 '변절'

입력
2007.08.0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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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박을 반대한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흐름이 바뀌는 게 맞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싱가포르의 국부(國父) 리콴유 전 총리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포커게임에 빠져 가산을 탕진한 쓰린 경험이 있다.

도박을 아편이라고 생각한 그는 1965년 독립 이후 카지노 설치만은 불허했다. 그런 그가 2005년 거센 반대 여론까지 무릅쓰며 전격적으로 카지노를 허가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올 신년하례식에서 "싱가포르를 선진국의 최상층부로 끌어올리기 위해 향후 5년간 성장에 집중하고 최고 선진국들의 인재와 자금을 유치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기 위해 카지노 같은 도박산업도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자, 과감히 개인적 소신을 버린 것이다.

● 싱가포르의 끊임없는 변신

아시아를 넘어 세계 경제허브로서 싱가포르의 위상은 나날이 공고해지고 있다.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항상 세계 1, 2위를 다투고,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손꼽히지만 변신을 멈추지 않는다.

지난 수년 간 금융 교육 의료 분야를 국가적 전략 산업으로 정하고 막대한 투자를 한 결실이 나타나고 있다. 전세계 금융 회사들이 몰려 이들의 자산 규모는 1998년에 비해 8배 가까이 늘었고, 부자들을 상대로 하는 프라이빗 뱅킹이 급성장, 2,500억 달러의 자금을 관리하고 있다. 존스 홉킨스, 스탠퍼드 같은 세계 명문 대학 13개를 유치해 지난해 외국 유학생이 7만 명을 넘어섰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의료기관의 질을 높여 지난해 의료관광객만 40만 명을 넘어섰다. 여기에 관광, 놀이 산업을 추가해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는 것이 카지노 산업 육성의 배경이다. 리콴유는 최근 싱가포르가 금융업과 카지노산업 성장에 힘입어 향후 5년간 '황금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아시아 경쟁국 가운데 가장 앞서나가는 싱가포르가 이렇게 미래를 위해 부단한 변신을 시도하는데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하다. 참여정부가 국정과제로 내건 동북아 허브 구상이 그 동안 어떤 결실을 맺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싱가포르가 아시아 금융을 싹쓸이하다시피 하면서 한 귀퉁이라도 차지하려는 동북아 금융허브의 꿈은 빛을 잃어가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 통과에 따른 금융 빅뱅이 기대되고 있긴 하지만, 변화의 속도는 시장을 따라가지 못한다.

중국 항만의 급부상으로 동북아 물류 허브로서 부산항과 광양항의 위상은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 동북아 허브의 전초기지로 조성한 인천경제자유구역은 몇몇 부동산 합작투자를 제외하고는 번듯한 외국자본이나 기업 유치 실적이 별로 없다.

균형발전을 내세운 정부가 수도권집중 억제에 더 정신이 팔려 있는 데다 유사한 지방개발 계획이 쏟아져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 허브 따로 서비스대책 따로

금융과 교육 의료 관광은 대표적인 서비스 산업이다. 싱가포르는 이들 산업의 허브일 뿐 아니라 아시아의 서비스 허브이다. 정부가 최근 내놓고 있는 서비스산업 육성대책의 문제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동북아 허브정책이 따로 있고, 서비스산업 육성대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중심을 잃은 채 그때 그때 현안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정책으로는 경쟁국들의 숨가쁜 발걸음을 따라갈 수 없다.

뉴욕타임스의 명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만은 <세계는 평평하다> 는 신작으로 주목을 끌었다. 평평한 운동장처럼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국가 간의 경쟁도 마찬가지다. 과거 어느 때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지도자의 혜안과 비전이 중요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무하마드의 리더십은 중동의 최소국 두바이를 중동의 심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우리 지도자들은 어떤 비전과 희망을 국민들에게 주고 있는가. 스스로 세계적인 대통령을 자처하는 현재 지도자의 낯 뜨거운 모습이나, 비전 제시보다 상대방 헐뜯기에 골몰하고 있는 미래 지도자의 모습에서 불안한 미래를 읽는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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