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상원의원은 대학 시절에 어떤 생각을 했고, 또 무엇을 고민했을까.
뉴욕타임스는 29일 힐러리 의원이 웰슬리대에 다니던 1965~1969년 당시 프린스턴대에 진학했던 고교 남자 동창 존 피보이와 주고 받은 수십통의 편지를 발굴, 공개해 이런 호기심에 답했다.
피보이의 동의를 얻어 공개한 편지의 일부 내용은 힐러리 의원이 여느 대학생과 마찬가지로 불안정하면서도 자기도취적인 생각을 현학적이고 장황한 표현에 담으려 했음을 보여준다.
1967년 4월에 쓴 편지에서는 “크리스마스 이후 내 앞에 여러 인생이 뒤범벅이 돼 펼쳐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했고 1967년 10월3일자 편지에선 “일요일은 아침부터 정신이 가물가물했는데 사람들, 특히 나 자신에 대한 혐오와 연민의 늪에서 헤맸다”고 썼다.
또 어떤 편지에서는 “스타가 되지 못할 나의 운명과 아직 화해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완고한 아버지에 대한 불만, 사교적인 룸메이트나 자신이 만났던 남학생들에 대한 경멸을 드러낸 편지도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편지들은 대부분 힐러리의 정치성 보다는 자아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보수적 성향에서 자유주의적 반전 활동가로 변해가는 힐러리의 정치적 변전 과정도 드러났다. 힐러리는 한때 ‘청년 공화당원’활동에 참여했는데 나중엔 그 활동을 ‘우스꽝스러운 광대극’에 비유했고 1967년 여름께부터는 공화당원을 ‘우리’라기 보다는 ‘그들’이라고 언급하면서 민주당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현재 남부 캘리포니아의 작은 여자대학인 스크립스 대학의 영어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피보이와 힐러리는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으나 서로를 ‘똑똑하다’고 생각해 계속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힐러리는 한 편지에서 피보이에게 “나중에 너가 유명해지면 네가 보낸 편지들로 많은 돈을 벌겠다”고 쓰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힐러리와 피보이가 대학시절 4년간 편지 교류 외에는 만나거나 전화통화도 하지 않았다면서 힐러리가 영부인이 됐을 때 1995년 고교동창 모임에서 한번 만났을 뿐이라고 전했다. 힐러리 의원측은 이 편지들이 공개된 데 대해 논평을 거절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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