핌 베어벡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전격적으로 사퇴를 선언했다.
베어벡 감독은 29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2007아시안컵 3ㆍ4위 결정전에서 일본을 승부차기(6-5)로 꺾은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전을 앞두고 대한축구협회에 사퇴 의사를 전했다”며 지난 13개월간 쥐었던 한국 축구의 지휘봉을 반납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베어벡 감독의 거취는 30일 귀국한 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기술위원회가 베어벡 감독의 사퇴 의사를 반려할 수도 있지만 본인의 의지가 강한 만큼 임기가 계속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베어벡 감독의 사퇴 선언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문자 그대로 ‘용퇴(勇退)’라고 표현할 수 있는 전격적인 결단이다.
벼랑 끝에 몰리기는 했지만 그에게 활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주력 선수가 빠진 상황에서 자신이 최소 목표로 내건 ‘4강 진출’에 성공했고 김치우(전남), 오범석(포항) 등 젊은 수비수들을 발굴한 것도 높이 평가 받을 만한 일이다. 또 다음달 22일이면 2008베이징 올림픽 최종 예선이 시작되는 일정도 그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미련없이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취임 후 심심찮게 ‘베어벡호’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된 상황에서 이번 대회의 좋지 않은 내용으로 ‘책임론’이 증폭되자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특히 취임 후 부진이 거듭된 데 따른 여론의 압박이 사퇴 선언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듯 하다.
베어벡 감독은 일본전이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사퇴의 배경을 묻는 질문에 “한국팬들은 늘 경쟁적이고 승리하기를 원한다”며 성적에 대한 중압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암시했다.
베어벡 감독은 이번 대회 들어 수 차례 여론의 압박을 의식하는 발언을 했다.
이라크전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는 “한국을 6년째 경험했기 때문에 한국팬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설령 상대가 세계 최정상급 팀일지라도 대표팀이 모든 경기에서 승리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라크전이 끝난 후에는 “우리 경기 내용이 정말 안 좋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국제 축구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팬들이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만족하지 못한다면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일이다”라며 지나치게 높은 팬들의 눈높이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베어벡 감독은 “어떤 제안이라도 앞으로 5개월 동안에는 사양하고 휴식을 취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중간평가’의 의미를 갖고 있는 대회에서 스스로 팬들이 만족할 만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민 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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