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장소에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쓰레기통을 설치하면 더욱 깨끗하고 보기에도 좋아지지 않을까요?”
시민운동가 김성철(45)씨는 휴일에 중학생인 두 아들과 서울 북한산을 오를 때마다 과일껍질과 음료수 병 과자 봉지 등 간식 쓰레기 때문에 골치다. 강북구 우이동 도선사 시민광장에서 출발해 백운대 정상을 오를 때까지 쓰레기통을 도통 찾을 수 없다.
집에서 쓰레기를 담을 봉투를 가져가지만 왕복 4시간 거리를 꼬박 걷다 보면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철엔 쓰레기를 장시간 지니고 다니는 게 껄끄럽기도 하다. 그는 “바위나 계곡 틈에 낀 쓰레기들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쓰레기를 버린 다른 등산객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출퇴근길 지하철역도 쓰레기통을 찾기 힘들다. 어린 아이들이 지하철에 설치된 자판기에서 손쉽게 과자를 구입하지만 버릴 곳은 마땅치 않다. 여성들이 즐겨먹는 일회용 커피 용기도 발 밑에 슬쩍 밀어넣고 차량에 두고 내릴 때가 적지 않다.
김씨는 “폭탄설치 등 테러위험으로 쓰레기통을 줄였다지만 속이 보이는 쓰레기통 등을 개발하는 등 충분히 해결 방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쓰레기통을 없애면 쓰레기가 줄어들까. 불교재단 한국창가학회(한국SGI)에서 환경평화운동을 하는 김씨는 공공장소와 가정은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는 “가정에선 남은 음식 찌꺼기를 없애거나 분리해 수거하는 등의 방법으로 쓰레기를 줄일 수 있지만 공공장소에선 쓰레기를 한 데 모아 버릴 수 있는 쾌적하고 편리한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일본 출장 중 도쿄 지하철역에 설치된 대형 종이박스를 생각했다. 시민들이 출근길에 무가지 신문을 보고 역 출구에 버릴 수 있도록 배려한 쓰레기통이다. 그는 “무단투기 단속이나 과태료 인상 등 강제만 할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한 데 모아 쉽게 버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29일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에 “공공장소에 다양한 친환경 쓰레기통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이현정 기자 agada20@hk.co.kr
■ 한국일보·희망제작소가 알아봤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쓰레기통은 거리에서 찾기 힘든 ‘희귀종’이 됐다. 95년 쓰레기 종량제 실시 이후 공공 쓰레기통에 가정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사례가 급증하자 지방자치단체들이 대대적인 철거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제 거리의 쓰레기통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한국일보와 희망제작소가 함께 알아봤다.
쓰레기 버리려면 수백m 걸어야
95년 이전 7,600여개에 달하던 서울시의 공공 쓰레기통은 2000년 3,200여개로 반 이상이 사라졌다. 이후 일부에서 추가 설치돼 현재는 4,000개 정도가 있다.
자원순환사회연대에 따르면 서울 명동~을지로 입구 양방향 인도 6.97㎞ 구간 내의 쓰레기통은 불과 6개로 쓰레기통 간 평균 간격이 1.16㎞나 된다. 휴지 한 번 버리기 위해 최대 600m 가량을 걸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대학로 혜화역~성균관대 입구 사이는 더욱 심각하다. 1.88㎞에 달하는 이 구간엔 쓰레기통이 양끝 지점에만 설치돼 있을 뿐 그 사이에는 하나도 없다. 종로도 마찬가지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세종로 경복궁~시청 앞, 광화문~종로 5가에 달하는 3.32㎞ 내에 단 2개만이 있어 평균 간격이 1.66㎞인 것으로 조사됐다.
무단투기지역 절로 생겨
문제는 쓰레기통 부족으로 인한 부작용이 ‘버릴 데가 없다’는 시민 불편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낮 시간대에는 수거 인력의 노력으로 쓰레기통 없이도 거리가 깨끗하게 유지되지만, 밤에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가 그대로 방치돼 있는 현실이다.
특히 누군가가 일단 쓰레기를 버린 지점은 무단투기 지역이 돼 버리기 십상이다. 쓰레기통을 찾지 못한 시민들의 눈에 잘 띄고 ‘죄의식’ 없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명동에는 16곳, 신촌과 강남역에서는 각각 27, 30곳의 무단 투기지역이 매일 발생했다.
단속강화보단 쓰레기통을 더 늘리는 게
서울 중구ㆍ종로구청 등 자치단체는 그 동안 대부분 쓰레기통 설치보다는 수거와 단속 강화에 초점을 맞춰 왔다. “쓰레기를 버린 사람이 처리 비용도 부담한다”는 종량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다.
특히 서울시는 최근 쓰레기 무단투기 과태료를 현행 3만원에서 7만원으로 133%나 높이는 조례 개정안을 준비하다 인상폭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심의가 보류되기도 했다.
서울시 환경국 관계자는 “쓰레기통이 너무 없어 불편하다는 민원을 받아들여 30일 ‘가로(街路) 휴지통,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워크숍을 열기로 했다”며 “쓰레기통 개수를 늘리는 것을 전제로 수량과 위치, 기능 등 개선방안을 충분히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희망제작소 정기연 연구원은 “무작정 성숙한 시민의식이나 단속 강화만을 외칠 게 아니라 시민들이 쓰레기를 불편없이 버릴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 주는 게 더 중요하다”며 “도시 미관에도 도움을 주는 개성 넘치는 디자인, 분리수거가 가능한 친환경적 쓰레기통 등을 확대 설치하는 것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김재욱 인턴기자(연세대 사회학 3년)
■ 해외 명물 '아이디어 쓰레기통'
공공장소의 쓰레기통은 단순히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만이 거리의 미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해외에는 톡톡 튀는 디자인이나 특별한 기능을 갖춘 쓰레기통이 지역 ‘명물’로 자리잡은 사례가 상당수 있다.
독일 베를린의 ‘말하는 쓰레기통’이 대표적이다. 태양열로 작동하는 이 쓰레기통은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에게 “Vielen Danke(매우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건넨다. 칭찬과 격려를 기대하는 사람의 심리를 감안해 만들어졌다.
유럽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로 손꼽히는 베를린에는 이 같은 쓰레기통이 2만개 이상 설치돼 있다.
미국 시카고의 미시간 호숫가에 있는 ‘태양열 압축 쓰레기통’도 눈길을 끈다. 쓰레기양이 일정 정도에 이르면 내부 압축기가 자동으로 작동, 추가 공간을 만들어낸다. 압축 효과에 따라 용량은 일반 쓰레기통에 비해 최대 4, 5배에 달한다.
압축기는 태양열로 자동 충전된다. 쓰레기통 공간 부족으로 그 주변까지 지저분해지는 경우가 잦은 우리나라가 도입할 만한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종이 쓰레기통’도 있다. 단순하고 깔끔한 데다 나무 형태의 디자인을 표면에 그려넣어 친환경적인 느낌을 준다. 설치와 수거가 매우 간편하다는 장점도 있다.
김정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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