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 아빠 한번만 다시 만났으면…"
“한번만 다시 만났으면…”, “지혜야, 아빠는 가장 큰 생일 선물을 받고 하늘나라로 가셨어. 알았지?”
고 배형규(42) 목사의 부인 김희연(36)씨는 27일 오후 찢어지는 가슴을 움켜 안고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이어 갔다. 그는 “희생은 남편만으로 충분하다”며 “더 이상의 희생자는 없어야 한다”고 간절히 호소했다.
김씨는 “고통스런 지난 일주일을 지내면서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힘든 지 알았다”며 “피랍자 가족들이 충분히 겪고 있는 고통이 더 이상의 슬픔으로 깊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의 석방과 무사귀환을 위해 필요한 모든 노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와 미국, 아프간 정부의 협력을 간곡히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검은색 원피스 차림에 핏기조차 없는 창백한 얼굴로 언론 앞에 나선 김씨는 “모진 마음을 먹자”며 이를 악 다물었지만, 사랑하는 남편 이름 앞에 붙은 죽음을 뜻하는 ‘고(故)’ 자를 차마 읽지 못하고 눈물만 쏟아 주위를 숙연케 했다. 특히 전날 밤 9살 난 딸 지혜에게 아빠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했냐는 물음에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손수건만 움켜 쥔 뒤 “그날(25일)이 아빠의 생일이었는데….”라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김씨는 “아직도 (배 목사의 죽음이)믿기지 않는다. 한번만 더 만났으면 좋겠다”며 흐느낀 뒤 더 이상의 질문에 답변을 하지 못했다. 배 목사의 형 신규(46)씨는 “형인 내가 동생한테 집안 일을 물어보고 결정했을 정도로 생각이 깊고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다”며 “정부의 노력에도 협상이 잘 진전되지 않아 답답하다”며 가슴을 쳤다.
■ "다들 무사해야 아들 눈감을 텐데…"
"하늘에 있는 형규와 우리 가족은 피랍자 22명이 모두 무사히 풀려나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27일 저녁 제주 영락교회 1층 사무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바짝 마른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8분 가량의 짧은 인터뷰 내내 억장이 무너지는 비통함을 억누르려 애쓴 칠순 아버지의 한마디 한마디는 피맺힌 절규나 다름 없었다.
고 배형규 목사 추도 및 피랍자 무사귀환 기원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에 모습을 드러낸 아버지 배호중(72)씨는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초췌해 보였다. "몸이 말을 안 들어서…"라며 말문을 연 그는 무엇보다 아직 억류돼 있는 피랍자들의 안전을 걱정했다.
그는 "형규와 함께 했던 이들이 무사귀환 해야만 아들도 편히 눈을 감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이 아프가니스탄 봉사단장으로 나머지 단원들을 이끌다가 피랍 당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며 외부에 모습을 일절 드러내지 않았던 그였다. 피랍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그의 소망은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탈레반 무장단체를 향한 간절한 부탁으로 이어졌다. 그는 "억류돼 있는 봉사대원들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제발 빨리 풀어달라"고 애원했다.
아들의 희생을 '하늘의 뜻'으로 생각하며 담담히 받아들인다는 그는 "다른 사람을 돕는 봉사를 할 때 내가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항상 '나는 무익한 종'이라고 대답하라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배씨는 "형규는 오지에 봉사활동을 하러 나갈 때는 유서를 써놓고 갔다"며 "아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약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고 치료하는 봉사활동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고 말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제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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