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버스 차창 밖으로 활짝 핀 무궁화가 아름답다. 다들 바쁘거나 무심해서 나라꽃 무궁화가 언제 피고 지는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100여일 간 줄기차게 피고 지는 무궁화는 장마가 끝나 가는 요즘에 가장 아름답다. 화려하거나 향기가 진한 것은 아니지만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간다.
꽃이 귀한 여름철 남쪽에선 배롱나무 분홍꽃이 함께 자태를 뽐내지만 중부지방에선 무궁화뿐이다. 촌락의 생울타리, 도심의 자투리 녹지나 공원, 더러는 건물 주변 화분 안에서까지 끝없이 피고지며 더위에 지친 심신에 생기를 선사한다.
■ 무궁화는 보통 2~4m의 키로 아담한 관목류에 속한다. 그런데 엊그제 강원 홍천군 서석면의 고양산 해발 650m 지점에서 키가 7.5m나 되는 대형 무궁화가 발견됐다. 국내에서 발견된 무궁화 나무 중 가장 크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전북 남원의 6m짜리 무궁화가 가장 큰 나무로 알려져 왔다.
수관 너비 7.7m에 밑둥 직경이 36.7㎝나 돼 교목으로 봐도 손색이 없다. 무궁화를 군의 캐릭터로 사용할 정도로 무궁화의 고장임을 자랑하는 홍천군으로서는 경사가 아닐 수 없다.
■ 나라꽃 무궁화의 자생지가 우리나라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서운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홍천의 대형 무궁화도 발견된 장소 부근에 1950년대까지 사찰이 있었다니 자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무궁화 연구하는 식물학자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궁화 노고목을 조사했으나 자생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가장 오래된 무궁화는 안동 예안향교 앞마당의 것으로 100살 정도 된다고 한다. 홍천의 대형 무궁화의 수령은 50~1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궁화 노고목이 드문 것은 주로 인가 주변에 생울타리로 심었던 때문일 것이다.
■ 무궁화 자생지가 우리나라에 없다고 해서 나라꽃으로서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도나 중국 남부 원산으로 열대성 식물이긴 하나 내한성이 강한 탓에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땅에 전래돼 선조들의 사랑을 받았던 꽃이다.
조선 세종 때 강희안이 저술한 양화소록(養花小錄)에는 "우리나라에는 단군이 개국할 때부터 무궁화를 가꾸어서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무궁화의 나라(槿域)라고 일컬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물론 나라꽃이라고 지나치게 강조하면 거부감을 줄 수 있다. 올 여름에는 좀 편한 마음으로 무궁화에 다가가보자.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