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만 해도 패션기자로서 치러야 하는 연례행사가 있었다. ‘노출패션’이라는 주제의 기사다.
올해의 노출 부위는 가슴선이라느니, 배꼽과 골반뼈라느니, 거기다 하루종일 길거리에서 건진 과다노출 사진 몇 장을 첨가하고 노출패션을 보는 여러 사람들의 촌평을 곁들이는 형식.
그러나 ‘꽃놀이도 한두 번’이라고 했다. 패션에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는 글이 쓰는 사람이라고 물리지 않을까.
그런데 놀라움 반 다행스러움 반, 올 여름엔 노출패션에 대한 강박이 거의 없다. 이유가 재미있다. 노출이 워낙 일반화하니까 노출패션이라고 굳이 이름을 다는 것 자체가 촌스러워진 것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만원버스 안에서조차 등이 완전히 파인 홀터넥 티셔츠 혹은 알록달록한 브래지어 끈을 일부러 드러낸 차림의 여성을 보는 것이 낯설지 않게 됐다.
하체의 곡선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레깅스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몸짱 시대에 아름다운 몸매를 과시하는 것은 자부심의 일종이 된 것이다.
패션칼럼니스트 조명숙씨는 “남성들이 패션에 눈 뜬 것도 노출에 대한 우리사회의 호들갑을 없앤 배경”이라고 말한다. 스타일이 곧 경쟁력이 되는 패션의 전략을 습득하기 시작한 남성들이 노출도 패션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니 이제 과도한 노출패션이 밤거리의 위협을 부를 수 있다는 식의 훈시는 10대 딸을 둔 어머니들에게서나 엿들을 수 있으려나.
장마 끝나면 곧바로 무더위다. 휴가지로 떠나는 발걸음이나, 오랜만의 휴식을 통해 가뿐해진 몸으로 이열치열 도심 귀환을 서두르고 있거나 필요한 건 이 무더위를 건강하고 멋지게 날 수 있는 패션 전략이다.
도심과 휴가지, 두 경우의 수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아이템 딱 한가지를 고르라면 단연 숏팬츠다.
올해 숏팬츠의 인기는 대단하다. 유명 해외 브랜드나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캐릭터브랜드는 물론이고, 40대 이상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브랜드에서도 숏팬츠를 내놓고 있다.
패션전문가들은 숏팬츠의 인기를 노출의 즐거움과 활동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본래 바지의 분류에서 쇼츠는 한글순화 용어로 ‘한뼘바지’ 길이를 말한다. 엉덩이 선을 살짝 가리는 정도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무릎위 20cm정도까지의 길이를 통칭한다.
온라인 패션 라이프스타일 커뮤니티 스타일미즈(www.stylemiz.co.kr)의 패션에디터 김민정씨는 “어정쩡한 길이의 하의가 면을 분할해 하체를 더 짧아보이게 하는 반면 숏팬츠는 다리가 길어보이면서 섹시하고 활동적인 여성미를 강조해준다”고 말한다.
숏팬츠가 인기 아이템으로 떠오른 데는 ‘캐주얼용’이라는 기존 관념을 깨는 새로운 디자인이 쏟아진 것도 큰 이유다. 끌레몽뜨 김진희 디자인이사는 “미래주의와 미니멀리즘이라는 유행의 큰 흐름이 반바지도 더 정장처럼 혹은 여성스러운 느낌으로 재해석하는 등 숏팬츠에 다양한 성격을 부여했다”고 설명한다.
바지 단을 접어 올려(롤업) 길이를 조절하도록 하거나, 바지 단을 봉긋하게 부풀리는(벌룬 스타일) 식으로 사랑스럽고 좀 더 갖춰 입은 듯한 느낌을 살린 것 등이 대표적이다.
숏팬츠를 제대로 소화하려면 디자인에 따라 세심한 스타일링이 필요하다. 스타일리스트 최선미씨는 “롤업이나 벌룬 팬츠는 품이 넉넉하게, 무릎위까지 오는 크롭트는 허벅지에 꼭 맞게 입어야 길고 가느다란 유행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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