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이 중대 고비가 될 것”이라던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의 말은 사실이 됐다. 낙관과 우려, 충격적인 소식이 연이어 외신을 통해 흘러 나오자 피랍자 가족들과 국민의 심정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갔다.
이날 오후 4시(한국시간)까지만 해도 가족들은 전날 밤부터 이날 새벽까지 보도됐던 낙관적 소식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았다. 특히 새벽 0시30분쯤 CNN 방송이 아마디가 “이번 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낙관한다”고 말했다고 전하자 정부와 피랍자 가족들은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는 여유를 갖기도 했다.
오전에는 미국 abc 방송이 “오늘 중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키알 모하메드 후세이니의 발언을 전했다. 후세이니는 가즈니주(州) 의원이자 5인으로 구성된 협상대표단 일원. 역시 오전 일본 요미우리(讀賣) 신문은 아프간 정부 협상단 간부를 인용 “인질 교환이 아니라 현금으로 사건이 해결될 가능성”을 전했다.
어느 정도 진전이 되는 것처럼 보이던 상황이 급전직하한 것은 오후 4~5시께 아마디가 “한국 및 아프간 정부와의 협상이 실패했다”고 여러 외신에 전화로 알리면서부터. 아마디는 “오전 11시30분(한국시간 오후 4시)과 오후 2시(한국시간 오후 6시30분) 사이 한국인 인질 중 몇 명을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협박했고, 특히 AP통신과의 전화에서는 “100% 죽이겠다”고 경고했다. 한국과 아프간 정부 대표단이 심리적 압박감을 받도록 해 마지막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겠다는 고도의 심리전이었던 것. 초조와 긴장감 속에 일부 가족은 실신하는 안타까운 광경도 목격됐다. 그러나 6시30분쯤 아프간 정부 협상단 키얄 무하마드 후세인이 이 같은 사실을 부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후세인은 “탈레반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협상이 실패했다는 신호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긴장했던 가족들은 오후 7시쯤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에 거액의 몸값을 지불했으며, 수감중인 8명의 석방을 약속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다시 극적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오후 9시쯤 한국 정부가 “23명 중 8명이 석방돼 안전한 곳으로 이동 중이며, 이들의 신병이 인도되는 대로 안전한 곳으로 이송, 간단한 건강검진을 실시한 뒤 빠른 시일 내에 귀국시킬 방침”이라고 밝힌 것이 이날 중 가장 희망적인 대목이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이들 8명이 안전한 가즈니주 인근 미군 부대로 이동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도감은 겨우 1시간도 지나지 않아 경악과 충격으로 바뀌었다. 9시20분께 알 자지라 방송이 “한국인 남자 인질 중 1명을 살해했다”는 아마디의 말을 전한 것이다. 방금 전까지만 8명이 풀려나는 줄만 알았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후 아마디는 AIP, AP 등을 통해 한국인 남자 인질을 현지시간으로 오후 4시께 살해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 아프간 경찰은 해당 인질이 아파서 제대로 걷지 못했기 때문에 총을 쏴 살해했다고 무장단체측이 밝혔다고 전했다. 사인이 병사냐 살해냐를 두고 언론사들이 각기 다른 추측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이어 오후 10시께 로이터 통신은 탈레반의 ‘최종 협상 시한’을 전했다. 아마디는 로이터에 “아프간 정부가 오전 1시(한국시간 5시30분)까지 죄수를 석방하지 않을 경우 나머지 인질도 살해하겠다”고 경고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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