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나 방문객 모두 현지 사람들이 외국인과 그들의 방문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 현지 정세는 어떤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 탓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에 의지하지 않고 한국의 독자적 정보망을 하루 빨리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중동 국가인 요르단의 국립 요르단대 라자이 알 칸지(55) 교수는 25일 한국인 23명이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에 납치된 이유를 이 같이 분석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한국과 이슬람의 문화 차이를 연구하기 위해 지난달 한국을 찾은 알 칸지 교수는 “한국인들은 아프간이나 이라크가 얼마나 위험하고 이들 국가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 올바르고 구체적인 정보 없이 위험 지역을 찾아 가고 있다”며 “민간인들의 보안 의식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한국 정부의 정보력 부재가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했다.
알 칸지 교수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 유럽 국가들은 촘촘한 자체 정보망을 갖추고 자국민들에게 시시각각 ‘현지 상황’을 제대로 알려주고 있다.
그는 2004년 6월 이라크 무장단체인 ‘유일신과 성전’에 의해 납치됐다 살해된 고 김선일(당시 34세)씨를 예로 들며 “한국 정부는 당시 제대로 된 정보 하나 없이 우왕좌왕 했다”며 “그 때에 비하면 나아지기는 했지만 꼭 필요한 내용은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피랍자 협상에서 애를 먹는 이유에 대해서는 “일이 터지면 미국 정보기관 등에 의지해 임기응변으로 일을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라며 “대사관 직원이 아닌 현지 주민들과 현지에서 여러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화와 종교의 차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이들 지역을 찾는 방문객의 자세도 문제 삼았다. 알 칸지 교수는 “많은 한국인이 이슬람 지역에서 봉사도 하고 또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슬람 사람들은 쉽게 종교를 바꾸지 않으며 혹시 그런 마음을 갖고 간다면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 한국 사람들은 정부가 위험 지역이라며 가지 말라는 경고도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며 “자신들의 목적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위험 지역을 가는 행위 자체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게 한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알 칸지 교수는 이번 납치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람들이 자칫 이슬람 전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탈레반과 알 카에다 등은 소규모의 급진 세력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부분의 이슬람 교도들은 그들의 사상 등에 동의하지 않고 있는 데도 탈레반 등은 자신들을 이슬람 전체로 바라봐 주는 것을 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이슬람 문화와 이슬람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이슬람 지역을 ‘오일 달러’ 등 경제적 관점으로만 바라보고 접근 했을 뿐 문화와 인적 교류는 매우 부족했다”며 “상당한 시간과 돈이 필요하더라도 평소 이슬람 문화와 사람들을 알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래 전부터 한국 건설 업체들이 중동에서 지은 건축물 때문에 한국을 굉장히 친숙하게 여기고 있다는 알 칸지 교수는 “많은 이슬람 젊은이들은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한국에 와서 공부 하고 싶어 한다”며 “요르단대에 새로 만들어진 한국학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김도연 인턴기자(이화여대 경영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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