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자의 좋은 점은 시대를 이끌어온 인물들을 근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다는데 있다. 특별히 정치가나 전문가, 지식인을 취재할 때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언론의 잘못된 의제설정이 국가적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불필요한 사회위기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2. 1987년 미국 서부는 유난히도 더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미국의 지상파 방송은 대규모 경찰진압과 화염병이 난무하던 서울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탁하고 쳤더니 억하고 죽었다”는 경찰 수뇌부의 박종철군 사인발표는 일반 시민의 분노를 자극했다.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까지 거리로 나서면서 “군사정부 체제로는 곤란하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듯이 보였다.
#3. 그 해 미국 아리조나주립대와 UCLA에서 “한국의 민주화”와 관련된 주목할 만한 국제 세미나가 열렸다.
아리조나 세미나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김동영 의원을 중심으로 홍사덕, 강삼재, 문정수 의원과 강신옥 변호사, 그리고 김영삼 신민당 고문의 비서실장인 김덕룡씨와 가신처럼 따르던 홍인길, 박종웅씨가 참석했다.
UCLA 세미나에는 이홍구, 한승수, 김광웅, 박세일 등 서울대 교수가 대거 참석했으며, 미국 쪽 파트너로 스테판 해가드(하버드), 피터 구레비치와 피터 에반스(UC 샌디에고), 그리고 리차드 스클라(UCLA) 교수가 참여했다.
서울 거리나 아리조나와 LA에서 얻어진 결론은 같았다. 한국이 민주화를 이루지 않고서는 “더 이상 한미공조체제에 의한 사회 안정이나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점은 정치인들이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민주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로 펼친 반면에 교수들은 “민주화 이후에 한국 사회에 어떠한 정치경제체제를 구축하느냐”에 초점을 맞추어 나갔다.
이들 민주화 세력은 마침내 집권에 성공했으며 문민정부시대를 열어간다.
그러나 곧 국제금융 시스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IMF 경제위기를 초래한다. 지식인들도 현실정치에 참여하며 머리를 빌려주었지만 위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언론도 한반도 주변정세에 대한 감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나마 다행은 한국사회가 지속적인 발전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지난 20년간 혼란과 소요 속에서도 정치적 민주시스템을 구축해 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아젠다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한반도 비핵화이며 궁극적으로는 통일이다. 평화가 정착되지 않고서는 더 이상 한반도 균형발전이 곤란하다.
더구나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 민족의 생존권마저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북한 체제가 갑자기 무너진다고 해도 결과는 비슷하다. 마치 민주화 이후에 IMF 국가위기를 맞았듯이, 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통일은 국가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통일 이후에 한국 사회가 어떠한 정치, 경제, 사회문화 시스템을 구축할 지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겠다.
문제는 국내 지상파 연속극처럼 북한 핵 이슈가 별다른 진전 없이 “다시 원점으로(back to square one)”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는 데 있다.
최근 한승주 고려대 총장의 “전환기 세계 속의 한국”이란 국제 하계대학 특별강연 내용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과 러시아의 한반도 외교정책은 소리 없이 급선회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중국이 남북한에 등거리 외교정책을 펼쳐왔듯이, 미국도 남북한을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등거리 정책을 펼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 협상을 통해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려는 전략적 사고까지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설명에도 북한 핵 이슈는 여전히 어려우며, 그래서인지 우리와 상관없는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6자회담에 따른 영변의 핵 설비 제거나 무력화 협상관련 뉴스의 설명력을 높여야 하는 이유이다.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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